
성폭력 피해자 조사는 피해자에게 큰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라면 경찰 조사나 법정 증언에서 혼자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수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은 피해자가 안정적으로 진술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기준은 가족의 요구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와 진술 안정성입니다.
성폭력 피해자 조사, 혼자 받아야 할까?
A는 17세 고등학생입니다. 지인 B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부모에게 털어놓았고,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며칠 뒤 A는 피해자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미성년자인 자녀가 낯선 조사실에서 피해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피해 사실을 다시 말하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A는 사건을 처음 털어놓았던 학교 상담교사 C가 옆에 있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C는 A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A의 말을 끊거나 대신 말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폭력 피해자 조사에서 가족이 아닌 상담교사도 함께 들어갈 수 있을까요. 반대로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가 동석할 수 있을까요.
성폭력처벌법 제34조의 핵심은 무엇일까?
성폭력처벌법 제34조는 일정한 성폭력범죄 피해자와 19세 미만 피해자 등을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 검사·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신청하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게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34조(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의 동석)
① 법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에 검사,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신청할 때에는 재판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게 하여야 한다.
1. 제3조부터 제8조까지, 제10조, 제14조, 제14조의2, 제14조의3, 제15조(제9조의 미수범은 제외한다) 및 제15조의2에 따른 범죄의 피해자
2. 19세미만피해자등
② 제1항은 수사기관이 같은 항 각 호의 피해자를 조사하는 경우에 관하여 준용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경우 법원과 수사기관은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동석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법정 증언 단계에서 피해자를 보호합니다.
둘째, 같은 규정이 수사기관의 피해자 조사에도 준용됩니다. 즉 성폭력 피해자는 법정에 가서야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부터 신뢰관계인 동석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닙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치심·불안·긴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인 동석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안정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입니다.
일반 형사사건의 신뢰관계인 동석과 무엇이 다를까?
형사소송법상 신뢰관계인 동석은 범죄피해자 일반을 위한 제도입니다.
피해자의 연령, 심신상태,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해 피해자가 현저한 불안이나 긴장을 느낄 우려가 있을 때 문제됩니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일반 범죄에서의 피해자 신뢰관계인 동석제도에 대하여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피해자의 법정 증언, 가족이 옆에 있어도 될까? ─ 신뢰관계인 동석 범위와 주의사항
반면 성폭력처벌법 제34조는 성폭력 피해자와 19세 미만 피해자 등을 위한 특별규정입니다.
구별의 핵심은 보호 강도와 적용 장면입니다.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주로 법정 증언 장면에서 신뢰관계인 동석이 문제됩니다.
그러나 성폭력처벌법은 수사기관 조사 단계까지 명시적으로 포섭합니다. 또한 일정한 대상 피해자에 대해 신청이 있으면, 재판에 지장을 줄 우려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동석하게 하여야 한다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에서는 “조사실에 혼자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으면 진술이 끊기거나 중요한 부분을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때 신뢰관계인 동석은 피해자의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가족이면 무조건 동석할 수 있을까?
많은 보호자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족의 감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입니다.
성폭력처벌법은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동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신뢰관계인 동석은 가족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A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보호자이고 A를 걱정하고 있더라도, A가 어머니 앞에서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면 어머니의 동석은 오히려 진술 안정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놀라거나 울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 A는 더 위축될 수 있습니다. 결국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석이 당연히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아니어도 신뢰관계인이 될 수 있을까?
신뢰관계인은 반드시 가족일 필요가 없습니다. 형사소송규칙은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가족뿐 아니라 동거인, 고용주, 변호사, 그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신뢰관계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상담교사, 상담사, 보호시설 종사자, 피해자가 오래 신뢰해 온 사람도 검토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그 사람이 피해자에게 실제로 안정감을 주는지, 조사나 증언을 방해하지 않는지가 기준입니다.
다만 신뢰관계인은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에 대신 답하거나, 피해자에게 특정한 답변을 암시하거나, 조사 과정에 감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선을 넘으면 동석이 제한될 수 있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도 불필요한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인 동석을 신청할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실무에서는 “같이 들어가게 해 달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동석이 왜 필요한지, 그 사람이 왜 적절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피해자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피해자가 그 사람의 동석을 실제로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동석자가 피해자와 어떤 관계인지, 동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동석자가 진술에 개입하지 않고 심리적 안정만 도울 수 있는지도 정리해야 합니다.
감정적 대응은 피해야 합니다. 보호자가 분노하거나 수사기관에 강하게 항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정작 피해자가 더 위축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 절차에서는 감정의 크기보다 준비의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피해자의 상태, 원하는 동석자, 동석 필요성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맺음말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 조사나 법정 증언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은 단순한 긴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라면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진술의 안정성과 정확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핵심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성폭력처벌법상 일정한 성폭력 피해자와 19세 미만 피해자 등은 신뢰관계인 동석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피해자 등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원칙적으로 신뢰관계인 동석을 허용해야 합니다.
- 이 제도는 법정 증언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피해자 조사 단계에도 적용됩니다.
-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동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동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 가족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신뢰관계인으로 검토될 수 있습니다.
- 신뢰관계인은 피해자를 대신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정적으로 진술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성폭력 피해자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보호자처럼 보이는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누구와 함께할 때 가장 안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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