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정에서 거짓말, 무조건 위증죄일까?
법정에서 선서를 한 뒤 거짓말을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위증죄”를 떠올립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도 “위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선서 후 거짓말은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민사소송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민사소송에서는 당사자(원고, 피고)도 선서를 하고 진술을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법원에서 선서를 하고 신문을 받은 뒤 거짓말을 하면, 과연 위증죄가 성립할까요?
아니면 다른 제재만 가능할까요?
이 글에서는 법령과 판례를 토대로 그 해답을 풀어보겠습니다.
2. 형법상 위증죄의 규정과 요건
형법 제152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①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위증죄의 성립 요건은 ① 법률에 의한 선서, ② 증인 신분, ③ 허위 진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체가 반드시 "증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아무리 선서를 하고 거짓말을 해도, 법적으로 "증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법적으로 누구를 의미할까요?
일반적으로 증인은 소송의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이 아닌 제3자를 의미합니다. 즉,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보고하고 진술하는 역할을 하는 자를 말하지요. 즉, 당사자와 증인은 엄연히 구분됩니다.
3. 민사소송법상 당사자신문 제도
그런데 민사소송에서는 당사자에게 선서를 시키고 진술을 하게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당사자신문 제도이지요.
외관상으로는 흡사 증인신문 하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제도 중 하나이지요.
- 법원은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당사자 본인을 신문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당사자에게 선서를 하게 하여야 합니다. (민사소송법 제367조)
- 당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선서 또는 진술을 거부한 때에는 법원은 신문사항에 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369조)
- 당사자신문에는 증인신문 규정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373조)
이러한 당사자신문은 증인신문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지만, 주체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법적 지위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사소송의 당사자신문 과정에서 당사자가 선서 후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가 성립할까요?
4. 대법원의 판단 ─ 당사자와 증인은 구별된다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당사자가 법원에서 선서를 한 후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형법상 위증죄의 주체는 "증인"에 한정되며, 민사소송의 당사자는 증인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1998. 3. 10. 선고 97도1168 판결
민사소송의 당사자는 증인능력이 없으므로 증인으로 선서하고 증언하였다고 하더라도 위증죄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이러한 법리는 민사소송에서의 당사자인 법인의 대표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민사소송 당사자가 선서를 하고 진술을 했다고 해서 증인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당사자의 지위에서 진술하는 것일 뿐이며, 위증죄 성립 요건 중 ‘증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위증죄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5. 허위 진술 시 제재 ─ 위증죄 vs 과태료
그렇다면 민사소송 당사자가 선서 후 허위 진술을 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민사소송법 제370조(거짓 진술에 대한 제재)
① 선서한 당사자가 거짓 진술을 한 때에는 법원은 결정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따라서 당사자는 형사상 위증죄로는 처벌되지 않지만, 법원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자신문에서 거짓말을 하면 재판부가 신빙성을 의심하여 불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즉, 형사처벌은 피하더라도 소송상 불이익과 금전적 제재는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사자신문 과정에서의 허위진술의 대가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6. 맺음말 ─ 법정에서의 진술 태도와 실무적 시사점
정리하자면,
- 민사소송 당사자는 증인이 아니므로 위증죄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 따라서 선서 후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형법상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당사자가 선서 후 거짓말을 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으며, 법원은 해당 소송에서 거짓말을 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심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법정에서 거짓말하면 무조건 위증죄”라고 생각하지만, 민사소송의 당사자신문은 증인신문과 다르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두셔야 합니다. 증인과 당사자의 법적 지위를 구별하는 것은 실무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결국 법정에서는 어떤 경우든 허위 진술은 득보다 실이 큽니다. 민사소송에 임할 때에는 진실한 진술을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어이자 최선의 전략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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