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흥미있는 결정을 내렸다. 언론기사(동아일보, 2021. 5. 4. A12면)에 따르면,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3월 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대체역 편입 신청을 한 A씨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A씨는 "이웃을 사랑하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어떤 형태의 폭력도 행하면 안 된다는 양심을 형성했고, 이에 따라 군 복무를 할 수 없다면서 대체역 편입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성경을 배우고 집회 참석 등 꾸준히 종교활동도 했단다. 그런데 심사 과정에서 A씨가 2019년 11월 아동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밝힌 기각 사유가 흥미롭다. 심사위는 "전쟁에서 성폭력이 군사적 전략으로 널리 활용됐다는 점에서 여성과 아동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행위는 전쟁행위와 유사한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고, 이는 A씨의 군복무 거부 신념과 심각하게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점이 떠오른다. 첫째는 전쟁에서 이젠 더 이상 성폭력이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 중 상당부분은 여성과 아동이 차지한다. 이들은 그 특성상 성폭력의 표적이 되기 쉬우며 전시에는 더욱 그러하다. 실제 사례도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군사전략이 더 이상 허용될 여지는 없다. 이는 명백한 국제범죄에 해당되고, 행위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전쟁범죄 등 잔학행위에 대해 국제적 차원의 처벌을 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그 설립근거인 로마규정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며,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 등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Mindful that during this century millions of children, women and men have been victims of unimaginable atrocities that deeply shock the conscience of humanity," (금세기 동안 수백만의 아동, 여성 및 남성이 인류의 양심에 깊은 충격을 주는 상상하기 어려운 잔학행위의 희생자가 되어 왔음에 유의하며,)
구체적으로 로마규정 제7조는 인도에 반한 죄의 일종으로 "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강제임신, 강제불임 또는 이에 상당하는 기타 중대한 성폭력"을 규정하고 있다(Article 7. 1. g). 또한 이러한 행위들은 전쟁범죄에 해당되기도 한다(Article 8. 2. b. xxii).
각국의 국내법도 전시 성폭력 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군형법 제84조에서 전지 강간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전투지역 또는 점령지역에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법정형을 사형으로 고정시킨 점은 그만큼 전시 성폭력을 엄단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둘째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의 폭력성을 전쟁행위와 유사한 정도로 평가하였다. 이는 N번방, 박사방 사건을 겪으며 우리 사회가 형성한 법의식과도 궤를 같이 한다. 과거에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소지한 경우 대부분 기소유예되거나 기소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쳤다. 2020년 6월 2일부터 시행중인 아청법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이를 시청하거나 단순 소지한 경우에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새롭게 마련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최근 법원의 양형 수위는 과거보다 중해졌다.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법의식이 변한 것이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결정도 이러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범죄를 저지르면 형벌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수처분이 뒤따른다. (i) 수강명령/이수명령, (ii) 신상정보등록, (iii) 공개고지명령, (iv) 취업제한명령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는 여기에 추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도 주장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양심 내지 종교적 신념의 진정성이 심각하게 의심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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