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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교통사고

피해자와 합의 중 사정상 운전면허증만 주고 간 경우 도주운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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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주운전으로 몰린 억울한 운전자?

교통사고 현장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다가 갑자기 경찰차 사이렌이 울립니다. 혹시라도 음주운전이 들킬까 두려운 마음에, 운전자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건넨 채 현장을 떠납니다. 피해자도 자신의 차량을 몰고 사고현장을 벗어납니다.

 

그런데 며칠 후, 피해자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제출하며 가해자가 도주운전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럴 경우, 정말 운전자는 뺑소니범이 되는 걸까요?

 

2. 도주운전죄, 언제 성립되는가?

도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제1항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도주운전(뺑소니)의 핵심은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구호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였다는 점입니다. 다만, 단순히 사고 현장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도주운전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합니다.

  •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고,
  • 운전자가 그 사실을 인식하고도,
  • 구호 등의 적절한 조치 없이
  • 사고장소를 벗어나 사고야기자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

대법원도 도주의 의미에 대하여 동일한 취지의 판시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2도6903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라 함은 사고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전사고장소를 이탈하여 사고야기자로서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3. 피해자로부터 다친 곳이 없다는 말을 들은 후 운전면허증을 남기고 떠난 사례, 도주일까?

그렇다면 교통사고 운전자가 사고현장에서 다친 곳이 없다고 말한 피해자와 합의하던 도중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피해자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건네주고 가버린 경우 특가법에서 말하는 "도주차량 운전자"에 해당할까요? 이에 대한 흥미로운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1997. 7. 11. 선고 97도1024 판결
피고인은 이 사건 교통사고를 낸 뒤 길 옆으로 차를 세워 놓고 피해자에게 가서 괜찮으냐고 물으면서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호텔 밖으로 나가서 변상해 주겠다고 했고, 피해자는 현장에서 해결하자고 하면서 다친 데는 없으니 피해차량이 부서진 곳을 변상해 달라고 하였는데, 마침 사고장소인 호텔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나는 것 같자 피고인은 음주사실이 두려워 피해자에게 피해차량의 견적을 빼 보라고 한 다음 운전면허증을 건네주고 피고인의 차를 운전하여 가 버렸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차 번호도 알고 운전면허증도 교부받았으므로 더 이상 피고인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택시를 운전하고 간 다음 나중에 전치 2주의 경추 및 요추염좌상을 입었다는 진단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이라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구호하지 아니하고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야기자로서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 해당한다거나 교통질서의 회복을 위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였던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고 할 것인바, 이와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후 현장을 이탈하였다는 점만을 들어 피고인의 행위가 사고야기 후 도주에 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나 도로교통법위반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제1심 판결의 조치를 유지한 원심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 도주운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이 주목한 사실관계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다음의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피해자 스스로 사고운전자에게 다친 데가 없다고 하며, 다만 물적 피해를 변상해 달라고 말한 점
  • 이에 사고운전자는 피해자에게 피해차량의 견적을 보내 달라고 하면서 운전면허증을 건네주고 간 점

결국 구호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웠고, 또한 사고야기자를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웠다는 점이 대법원 판단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대법원이 일관되게 판시해 오고 있는 도주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4. 피해자로부터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현장을 이탈하였다면 도주일까?

위의 사실관계와 유사한 사례에서 대법원이 도주운전죄를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판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1996. 4. 9. 선고 96도252 판결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우좌골 골절상 등을 입게 하는 이 사건 교통사고를 일으킨 후 피해자로부터 넘어져서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일단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자는 말을 듣고, 먼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나중에 병원에 가도 될 것으로 여기고 피해자를 피고인의 자동차에 태우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는데, 피해자가 먼저 차에서 내려 경찰서로 들어가자 피고인은 자신의 음주운전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아무런 말도 없이 경찰서 앞에서 그냥 돌아가버린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사정이 이와 같다면 당시 피해자의 부상이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경미한 상태였고, 피고인이 돌아간 이유가 범죄를 은폐하고 도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주운전으로 인한 처벌을 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직업과 이름을 알려 주었다는 등의 여러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구호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도주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까요? 두 사례 모두 사고운전자는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현장을 이탈합니다. 하지만 두 사례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떠한 사실관계가 유무죄를 가른 핵심적 요소였을까요?

 

첫 번째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은 다친 곳이 없다고 하면서 물적 피해에 대한 변상을 요구하지요. 하지만 두 번째 사례에서 피해자는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라고 말하지요. 다시 말하면 피해자는 자신이 다쳐서 아프다는 말을 사고운전자에게 하였고, 사고운전자는 피해자의 상태를 인식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두 번째 사례에서 사고운전자는 피해자가 다쳤다는 점을 알면서도 사고현장을 이탈한 셈이지요. 이 점이 유무죄를 가른 핵심 요소로 보입니다. 

 

5. 맺음말

사고현장을 떠났다고 하여 반드시 도주운전(뺑소니)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음 두 가지 입니다. 

  • 피해자가 다친 사실을 운전자가 인식하였는가?
  • 적절한 구호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는가?

만약 피해자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으며 운전자가 신원을 명확히 남긴 상태였다면, 도주운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판례를 통해 ‘도주의 기준’을 명확히 이해하고, 억울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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