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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기무사 댓글조작 사건, 대법원 판단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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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권한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법적 논쟁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논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2021년 대법원이 선고한 기무사 댓글조작 사건은 공무원의 직권 남용 문제가 국민의 기본권과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군대 내부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사건의 전말과 법적 쟁점을 분석하고, 그 시사점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 댓글 공작의 시작과 논란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은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약 2년 동안 기무사 대원들로 구성된 조직인 '스파르타'를 통해 정치적 여론조작 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예하 부대원들로 하여금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여 트위터 활동을 통해 특정 정당을 비난하거나 당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게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지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포함했습니다:

  • 야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치적 댓글 2만여 건 게시
  •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한 포털사이트 계정 정보 수백 개 조회
  •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방송 수십 회 녹취 및 보고
  • 친여권 성향의 웹진 '코나스플러스' 제작과 홍보

이에 대해 배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법원의 판단을 거치며 점점 더 복잡한 쟁점으로 발전했습니다.

 

관련 법률규정: 직권남용죄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합니다.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입니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한 구성요건은 ① 공무원, ② 직권남용, ③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함, ④ 권리행사방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핵심적 구성요건인 "직권남용"이란 형식적으로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하여 목적ㆍ방법 등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부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은 법령상 의무없는 자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적 쟁점

이 사건에서 다루어진 주요 법적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의 지시가 실무 담당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것인지 여부. 배 전 사령관의 지시가 단순한 보조적 직무 수행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부하들에게 명백히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둘째, 공소시효 적용 여부: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이 포괄적 범행으로 판단될 수 있는지 여부. 여론조작 활동의 종료 시점이 2013년 1월로 판단되어 일부 혐의가 공소시효 내에 포함되었는지가 논의되었습니다. 이 쟁점은 포괄일죄의 성립 여부의 논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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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

항소심

항소심은 배 전 사령관의 정치관여 글 게시 지시를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로 보고, 직권남용죄의 요건인 "의무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2011년 범행 이후 공소시효 7년이 경과한 후에 공소가 제기된 일부 혐의에 대하여는 면소판결을 내렸습니다. 항소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배 전 사령관이 정치관여 글 게시를 지시한 것은 실무 담당자인 대북첩보계 계원들 및 예하부대 사이버 전담관들에 대해 자신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했을 뿐, 직권남용 성립 요건인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 직권남용죄는 직권남용행위의 상대방으로 특정된 사람별로 별개의 죄가 성립하고, 각 죄는 실체적 경합관계에 있다. 

 

대법원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배 전 사령관의 지시가 부하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강요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트위터 활동과 같은 온라인 여론조작 행위는 단순한 직무보조가 아니라,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강요한 범죄행위라는 것입니다. 또한 배 전 사령관의 댓글 공작 지시가 2013년 1월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고, 일부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실무 담당자들이 행한 트위터 활동이 배 전 사령관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배 전 사령관이 실무 담당자인 대북첩보계 계원들 및 예하부대 사이버 전담관들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 (특히 대법원은 헌법 제5조제2항에 따라 국군은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점, 이에 따라 군형법은 군인의 정치관여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점, 당시의 군인복무규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 선거권 또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외에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던 점, 구 국군기무사령부령, 구 방첩업무 규정, 구 국방홍보훈령의 내용을 종합하면 실무 담당자들에게는 따라야 할 직무집행 기준이 마련되어 있었고, 방첩 또는 첩보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 담당자들에게도 각자 자신들이 수행할 정보의 수집 및 처리 등 업무에 관하여 그 대상과 방식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등으로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었다고 판단하였음. 이에 따라 실무 담당자들이 행한 문제의 트위터 활동을 두고 기무사령관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음)
  • 배 전 사령관이 대북 첩보계원들과 예하 기무부대 사이버 전담관들에게 온라인 여론조작 트위터 활동을 지시한 행위는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로 일정 기간 동안 계속 행해진 것이므로 포괄해 하나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 (특히 대법원은 이 사건 지시가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공통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지시를 받은 대북첩보계원들 및 예하 사이버 전담관들의 활동도 "전체적 방향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실무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실무 담당자에게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지 여부 및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로 인하여 실무 담당자가 한 일이 그러한 기준이나 절차를 위반하여 한 것으로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인지 여부는 관련 법령 등의 내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도2030 판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라는 국가적 법익을 보호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으므로, 공무원이 동일한 사안에 관한 일련의 직무집행 과정에서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로 일정 기간 계속하여 저지른 직권남용행위에 대하여는 설령 그 상대방이 여러 명이더라도 포괄일죄가 성립할 수 있다. 다만 개별 사안에서 포괄일죄의 성립 여부는 직무집행 대상의 동일 여부, 범행의 태양과 동기, 각 범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 범의의 단절이나 갱신 여부 등을 세밀하게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도2030 판결)

 

파기환송심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후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22. 8. 26. 선고 2021노1684 판결)

  • 군은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한 조직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잃지 않을 엄중한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배 전 사령관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라 정치중립에 반하는 글을 예비역과 일반인에게 전송하도록 지시했다.
  • 이 사건 범행은 집권세력의 정권 유지와 재창출이라는 극히 정파적인 목적에서 이뤄져 헌법이 명시한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군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크게 손상시키고 군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해 비난가능성이 크다.
  • 비록 부임 전부타 기무사에서 댓글 공작 관련 업무가 일부 진행된 측면이 있지만, 해당 업무에 대한 고민 없이 계속해서 부대원들에게 위법ㆍ부당한 지시를 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2021년의 대법원 판결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1.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인지 여부의 판단기준 및 방법 명시

상급자의 지시가 단순한 직무보조를 넘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직권남용죄로 처벌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여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시를 받는 실무자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따라야 하는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합니다.  

 

2. 포괄적 범행의 판단 기준: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대법원은 범행이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로 이루어진 경우, 이를 포괄적으로 하나의 범죄로 판단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공소시효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결국 개별적으로 보이는 지시들이 어떠한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계속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3. 군의 정치적 중립성 강조

이번 판결은 국군기무사령부와 같은 군조직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권력을 남용할 경우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권력을 남용한 행위는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기무사 댓글조작 사건 직권남용죄 판결(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도2030 판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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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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