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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일반적 직무권한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직권남용죄 불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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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무사의 댓글조작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기무사령관은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약 2년 동안 부대원들에게 정치적 여론조작 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받아 기소되었고, 법원은 2022년 최종적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하였습니다. 

 

 

기무사 댓글조작 사건, 대법원 판단과 그 의미

"공무원의 권한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법적 논쟁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논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2021년 대법원이 선고한 기무사 댓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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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건 내용 중 일부에 대하여는 법원이 직권남용죄 혐의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기무사령관에게 일반적 직무권한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기초로 하여 관련 법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

2011년 11월경 이명박 정부 청와대 소속 비서관실은 국군기무사령부에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내용을 녹취ㆍ요약하여 보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국군기무사령관은 부대원들에게 해당 방송의 녹취록과 요약본을 작성해 청와대에 전송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약 10개월에 걸쳐 총 24회 진행되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국군기무사령관이 부대원들에게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며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를 적용하여 기소하였습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검찰의 주장 

구체적으로 당시 검찰은 기무사령관의 지시가 국군기무사령부의 직무범위를 벗어난 행위이며, 부대원들에게 "나는 꼼수다" 방송 내용을 녹취ㆍ요약하게 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부대원들에게 본래 직무인 방첩ㆍ첩보 수집과 무관한 민간 방송 내용을 처리하도록 지시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피고인의 주장

이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항변하였습니다. 

  • "나는 꼼수다" 방송은 대통령 및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 국군기무사령부는 첩보 작성ㆍ처리의 일환으로 해당 요청을 이행하였으며, 이는 청와대와의 정당한 업무 협조 차원에서 이루어진 활동으로 적법하다.
  • 국군기무사령관의 지시는 일반적 직무권한 내에서 수행된 정당한 지시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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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 무죄

1심 법원은 설령 국군기무사령관이 부대원들로 하여금 "나는 꼼수다" 방송 내용을 녹취ㆍ요약하여 청와대에 전송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군기무사령관의 이러한 행위가 형식적ㆍ외형적으로 국군기무사령부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지시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러한 공소사실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하게 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직무범위 비해당

국군기무사령부의 본래 업무는 군 보안방첩 업무인데, "나는 꼼수다" 방송의 녹취ㆍ요약은 민간 방송과 관련된 행위로 군 보안방첩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당 지시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직무 범위 어디에도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지시를 이행한 부대원들의 인식

법원은 실제 녹취요약 업무를 수행한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국군기무사령부 본연의 직무와 무관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부대원들은 해당 작업을 의무로 여기지 않았고, 단순히 청와대 요청에 따라 수행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부대원들은 "우리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청와대 비서관실 측에서 자기네들이 듣기 싫고 귀찮으니까 우리한테 떠넘긴 것으로 들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시를 받기 때문에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게 저희 업무가 맞는지, 제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조금 짜증 나는 업무였다." 등의 진술을 하였고, 이를 근거로 법원은 부대원들에게 해당 방송내용을 녹취ㆍ요약하는 것이 국군기무사령부 부대원으로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1심 법원의 판단은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되었습니다. 무죄 판단의 공통된 논거로는 "나는 꼼수다" 방송의 녹취ㆍ요약 지시가 국군기무사령관의 일반적 직무권한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직권남용죄는 기본적으로 일반적 직무권한 자체는 인정되어야 하며, 일반적 직무권한에도 속하지 않는 이른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꼼수다" 방송을 녹취ㆍ요약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한 부분에 대한 심급별 법원 판단(출처: 파기환송심 판결문 이유 부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된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도5329 판결 등)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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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시사점

이 판결은 직권남용죄의 성립 요건으로서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이 우선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순히 공무원의 지위나 직책을 이용한 지시행위가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를 검토할 때에는 우선 문제의 행위가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검토는 관련 법령과 규정에 토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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