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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초병의 제지에 불응하면 초소침범죄로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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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경계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경계를 책임지는 초병과 부대 간부 간의 마찰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합니다. "패스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초병의 간단한 요구를 무시하고 지나간 간부에게 형사처벌이 가능할까요? 초소침범죄가 성립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군대에서 중요한 법적 쟁점인 초소침범죄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초병과 간부 간의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법적으로 조율되는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실관계

부대 상황실장인 A는 동료들과 함께 부대 밖에서 술을 마신 후 부대 안 숙소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초병 B의 신분확인을 요구받았습니다. A는 당시 부대 정문 앞에서 근무 중이던 초병 B로부터 "패스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B에게 출입증을 보여주지 않고 정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B는 평소 부대 상황실장인 A의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A에게 초소침범죄가 성립할까요?

우선 초소침범죄의 구성요건을 살펴봐야 할 것이며, 초병, 초소의 개념도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관련 법률규정

제78조(초소 침범) 초병을 속여서 초소를 통과하거나 초병의 제지에 불응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2. 전시, 사변 시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3. 그 밖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초소침범죄는 ① 초병을 속여서 초소를 통과하거나, 초병의 제지에 불응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병은 경계를 그 고유의 임무로 하여 지상, 해상 또는 공중에 책임 범위를 정하여 배치된 사람을 말하고(군형법 제2조 제3), ”초소란 초병이 현실적으로 배치되어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일정한 범위의 장소를 말합니다.

 

초병은 경계를 고유의 임무로 하여 일정한 공간의 경계임무에 배치된 자이므로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자는 초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경계를 고유의 임무로 하는 직책을 가진 자라도 실제로 수소에 배치되지 않는 한 초병이 아닙니다. 철책근무자, 탄약고 근무자, 동초 근무자 등이 초병에 해당하며, 반면 경계근무를 하지 않는 검문헌병, 위병조장, 불침번근무자는 초병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한 초병의 제지는 초병이 경계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정한 행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고, ”불응은 초병의 제지를 받고서도 제지의 대상이 된 행위를 착수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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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쟁점

위 사안을 초소침범죄의 법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쟁점은 초병 B패스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 한 말이 초병의 제지행위인지, 그리고 부대 상황실장 A가 이를 무시하고 그냥 정문 안으로 들어온 행위가 초병의 제지행위에 불응한 것인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

고등군사법원은 위 사안에 대하여 부대 상황실장 A가 초병 B로부터 출입증 제시를 요구받았음에도 자신의 출입증을 제시하지 않고, 초병 B의 출입 확인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기다리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새로운 행위로 나아간 것은 초병의 제지에 불응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A에게 초소침범죄의 성립을 인정하였습니다. (고등군사법원 2016. 1. 20. 선고 2015노298 판결)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초병 B가 간부 A에게 출입증의 제시를 요구한 사실만으로는 A의 출입을 제지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A에게 초소침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죠.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6도1473 판결】
초병의 제지에 불응함으로써 초소침범죄가 성립하려면 초병의 제지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초병 B가 부대 간부 A에게 출입증의 제시를 요구한 행위가 제지행위에 해당하고, 제지의 대상이 된 행위는 정문을 통과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초병인 B가 부대 간부 A에게 ”패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지만, 그 어구에 비추어 이는 출입증(패스)의 확인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보이고,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행위의 금지를 요구하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또한 초병 B가 심야에 부대 밖에서 정문으로 걸어오는 간부 A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였으나, 초병 B는 당시 A의 얼굴을 보고 부대 간부임을 알았으며, 더 나아가 A를 막아서거나 부대 안으로 들어온 A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초병 B가 부대 간부 A에게 출입증의 확인을 요구한 행위만을 가지고 A가 정문을 통과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도록 요구하는 제지행위를 하였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판결의 시사점

흔히들 군대에서는 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 있으나, 경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경계는 그만큼 군대에서 중요한 임무이며,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자가 바로 초병입니다. 그래서 군형법은 초병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민간인이 초소를 침범하거나 초병에 대해 폭행협박하는 경우에는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군수사기관의 수사와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또한 피해자인 초병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부대 간부들은 부대를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정문에서 근무를 서는 초병을 만나게 됩니다. 초병들은 절차상 신분확인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다가 초병과 실랑이를 벌이는 간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병에 대한 범죄는 군형법상 엄히 다루어진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실제 초소침범죄는 평시에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도록 되어 있어 만약 부대 간부들이 이 죄를 범한다면 신분이 박탈될 수도 있습니다.

 

초소침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초병의 제지행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실제 사안에서는 위 대법원 판결과 같이 초병의 제지행위가 있었는지, 이에 불응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세부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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