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조직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일까요? 부하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지휘관이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추가한 뒤 서명을 강요했다면, 이는 정당한 권한 행사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행위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군대 내 상관과 부하의 관계에서 정당한 명령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강요죄가 성립하는 기준을 실제 사례를 토대로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
A는 대대장이고 B는 그의 부하 장교였습니다. A는 평소 B가 장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B가 당직근무를 서면서 탄수불을 직접 하지 않았으면서 직접 한 것처럼 보고하자, A는 B를 질책하면서 "너는 맨날 거짓말한 한다."라고 말하면서 탄수불을 직접 하지 않았으면서도 직접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점에 대해 진술서를 써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B가 써 온 진술서를 읽고 A는 “너는 왜 좋은 말만 쓰냐. 또 거짓말 하냐. 이것들은 허위내용이다.”라고 말하면서 진술서에 자신이 진술서의 내용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추가적으로 적으면서 B를 질책한 후 B에게 "거짓말 한 것을 인정하고 서명을 하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B가 진술서에 서명을 않고 머뭇거리자 A는 B에게 "너 이거 전 간부 앞에서 다 얘기해 볼까?", "사실조사 제대로 한번 해봐? 헌병대에 조사의뢰한다." 등의 말을 하며 서명을 계속 강요하였습니다.
대대장 A의 행동은 어떤 법적 문제가 있을까요?
대대장 A가 부하인 B에게 진술서를 작성하라고 한 점은 문제 없을까요?
더 나아가 대대장 A가 B의 진술서에 추가적인 내용을 적은 후 B에게 서명하라고 지시한 행위는 정당할까요?
이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강요죄의 구성요건과 주요 법리
우선 대대장 A의 행위에 대하여 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강요죄는 미수범을 처벌합니다.
형법 제324조 제1항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결국 강요죄의 구성요건인 ① 폭행 또는 협박, ② 권리행사방해, ③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행 또는 협박
강요죄의 수단으로서 협박은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악의 고지는 반드시 명시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떠한 해악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권리실현의 수단으로서 해악의 고지를 한 경우
해악의 고지가 나쁜 목적으로 행하여졌다면 범죄 성립에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해악을 고지하는 경우도 상당수 발생합니다. 이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때에는 사회통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결국 협박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시각에 따라 다툼의 여지가 있습니다.
해악의 고지가 비록 정당한 권리의 실현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라고 하여도 권리실현의 수단 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다면 강요죄가 성립하고, 여기서 어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 것인지는 그 행위의 주관적인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 즉 추구된 목적과 선택된 수단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5도16696 판결 등)
의무 없는 일
강요죄에서 의무 없는 일이란 법령, 계약 등에 기하여 발생하는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말합니다.
법적 쟁점
위 사례에서는 지휘관이 허위보고를 하는 부하에게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면서 지휘관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그 진술서에 추가한 후에 부하에게 서명하게 한 것이 강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그보다 먼저 지휘관이 부하에게 사실확인 차원에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1심과 고등군사법원 모두 상관이 부하로 하여금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휘관은 부하의 비위사실을 발견한 경우에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여 훈계, 징계 또는 수사 의뢰 등을 할 수 있으며, 업무능력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인사조치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사실확인의 일환으로서 부하에게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등군사법원 2019. 1. 24. 선고 2018노237 판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1조(성실의 의무), 제22조(정직의 의무), 제24조(명령 발령자의 의무),
제25조(명령 복종의 의무), 제36조(상관의 책무), 군인사법 제10장 징계, 제63조(인사기록)의 내용 및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상관이 직무수행을 태만히 하거나 지시사항을 불이행하고 허위보고 등을 한 부하에게 근무태도를 교정하고 직무수행을 감독하기 위하여 사실관계에 관한 확인서 작성을 지시하는 행위는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내린 정당한 명령이므로, 부하는 명령을 실행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지휘관이 부하가 작성한 진술서에 자신이 추가로 확인한 내용을 기재하고 부하에게 서명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이 부하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인정될까요?
군사법원의 판단
이 점에 대한 1심 군사법원과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 군사법원은 지휘관이 부하가 작성한 진술서에 자신이 추가로 확인한 내용을 기재하고 부하에게 서명을 요구한 행위가 부하에게 추가로 진술서 작성을 요구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지휘관의 행위만으로는 부하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문제된 사안에서 강요미수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상관이 부하에게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정당한 직무권한에 속하지만, 상관의 권한은 법령에 따라 일정한 한계를 가지며, 상관이 부하가 작성한 진술서에 부하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직접 기재하면서 서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직무권한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고등군사법원 2019. 1. 24. 선고 2018노237 판결】
상관의 직무권한은 헌법 제10조, 제12조, 제19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10조(군인의 기본권과 제한)의 내용 및 취지 등에 따라 한계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관이 부하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작성한 진술서에 부하의 주장과 다른 내용을 기재하고 부하로 하여금 다시 서명하게 할 권한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없고, 상관의 그러한 지시는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내린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부하는 그에 따라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작성한 2차 진술서에 피해자의 주장과 다른 내용을 기재하고 피해자에게 서명을 지시한 것이므로, 이는 대대장의 직무권한을 넘는 행위로서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없고, 피해자는 이 명령을 실행할 의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
판결의 시사점
우선 위 판결에서 "정당한 명령이 아닌 경우 부하는 그에 따라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판결의 전반적인 논리는 상관이 부하가 쓴 진술서에 내용을 추가하면서 서명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며, 따라서 부하는 이를 따라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고, 법률상 의무가 없음에도 이를 시킨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하에 대한 교육이나 훈계는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이 적법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관이 형사처벌이나 징계, 보직해임 등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지휘관은 부하를 교육 또는 훈계할 때 인권감수성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례에서와 같이 타인의 진술서에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 있더라도 내용을 직접 추가한 후 서명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되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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