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경계근무에 투입된 A 병사는 부대 근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근무를 기피하기로 마음먹고 수 차례 소속대 간부들에게 자살가능성을 호소하였고, 그 결과 GOP 경계근무에 투입되지 않는 후방지역으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A 병사의 행동은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특히 A가 원래 GOP에서 경계근무를 하였다는 점이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관련 법률조항
A 병사의 행위와 관련하여서는 군형법상 근무기피목적위계죄 성립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근무기피목적위계죄의 내용과 형량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형법 제41조(근무 기피 목적의 사술) 제2항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질병을 가장하거나 그 밖의 위계를 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2. 그 밖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위 법률조항과 같이 적전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근무기피목적위계죄는 형량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과연 “적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다행히 군형법은 “적전”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의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군형법 제2조(용어의 정의) 제5호
“적전(敵前)”이란 적에 대하여 공격ㆍ방어의 전투행동을 개시하기 직전과 개시 후의 상태 또는 적과 직접 대치하여 적의 습격을 경계하는 상태를 말한다.
법적 쟁점
군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부 범죄들은 “적전”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형량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납니다. 이 사안에서 문제 되고 있는 근무기피목적위계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전인 경우에는 법정형의 상한선이 징역 10년이지만, 적전이 아닌 경우에는 징역 1년으로 무려 그 차이가 10배입니다. 따라서 군형법에서 사용되고 있는 적전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 사안에서는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적전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안의 쟁점은 남방한계선 철책에 있는 일반초소(GOP)의 경계근무에 투입되었다가 근무기피목적위계죄를 범한 경우 군형법 제41조 제2항 제1호의 적전근무기피목적위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1심 군사법원은 A 병사가 남방한계선 철책에 있는 일반초소(GOP)의 경계근무에 투입되었다가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위계를 행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적전근무기피목적위계죄 성립을 인정하였습니다. 경계근무 장소가 북한군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점에 초점을 맞춰 “적전”임을 인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군형법 제2조 제5호의 “적전” 개념은 단순한 물리적ㆍ지역적 대치가 아닌 전술적 목적에서의 대치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축소사실인 근무기피목적위계의 공소사실만을 유죄로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도 고등군사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하였습니다.
【고등군사법원 2014. 4. 15. 선고 2013노260 판결】
군형법 제2조 제5호는 “적전”이란 적에 대하여 공격방어의 전투행동을 개시하기 직전과 개시 후의 상태 또는 적과 직접 대치하여 적의 습격을 경계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형법은 적전인 경우에 가중처벌하는 여러 조문을 두고 있고, 각 조문의 적전 개념은 군형법 제2조 제5호에 따라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군형법 제2조 제5호의 적전 개념에 ① 시간적인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면 적전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구별이 불가능하므로 시간적으로는 적에 대하여 전투행동을 개시하기 직전부터 전투행동 개시 후 종료할 때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② 공간적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전투지역의 확대 및 공격수단의 발달 등을 고려해 볼 때 GOP뿐만 아니라 해안, 해상, 공중 등 적전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으므로, 단순한 물리적ㆍ지역적 대치가 아닌 전술적 목적에서의 대치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이러한 제한 없이 GOP 근무 자체만으로 적전임을 당연히 인정한다면 GOP의 지휘관이 직무유기를 하는 경우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하며(군형법 제24조 제1호), GOP에서 군무이탈을 하는 경우에는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여야 하는(군형법 제30조 제1항 제1호) 등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에 이르게 된다고 할 것이다.
판결의 시사점
첫째, 위 판결은 적전의 시간적ㆍ공간적 범위 설정의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위 판결에서는 "적전"의 시간적 범위를 전투행동 개시 직전부터 전투 종료 시까지로, 공간적 범위를 전술적 목적에 따라 대치 상황이 유지되는 지역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는 적전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혼란과 불합리한 처벌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이해됩니다.
둘째, 단순히 근무 장소만으로는 적전 여부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위 판결은 GOP 근무라는 이유만으로 적전임을 단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근무 장소의 특성과 실질적 대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적전 여부를 판단할 때 경계 근무의 물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군사적 맥락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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