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유일한 부동산을 배우자에게 넘겼어요. 그런데 그 부동산엔 이미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죠. 저는 일반채권자인데, 이 거래를 취소할 수 있을까요?”
채권자 입장에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고민입니다.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까지 고려하지만, 부동산에 다른 채권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채권자취소권과 사해행위의 법리를 바탕으로, 부동산에 근저당이 있을 때 그 양도행위가 취소 가능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해행위란 무엇인가요?
민법 제406조에 따르면,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것을 알면서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경우, 이를 사해행위라고 하며, 채권자는 그 취소와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를 채권자취소권이라 부르며, 목적은 명확합니다.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려버리면, 남은 채권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법은 그 행위를 무효로 돌리고, 재산을 다시 가져와 채권을 보전하게 합니다.”
근저당 있는 부동산을 넘긴다면?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부동산은 이미 제3자의 권리가 걸려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담보로 묶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넘긴 경우, 일반채권자가 이를 사해행위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핵심 기준은 “부동산 시가와 피담보채권액 간의 차액”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0다42618 판결
저당권 설정된 부동산이 사해행위로 양도된 경우에 그 사해행위는 부동산가액, 즉 시가에서 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을 공제한 잔액범위 내에서 성립하고, 피담보채권액이 부동산가액을 초과하는 때에는 그 부동산양도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며, 여기서 피담보채권액이란 근저당권의 경우 채권채고액이 아니라 실제로 이미 발생하여 있는 채권금액이다.
즉, 담보물건의 실제 가치는 시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근저당권으로 담보된 실제 발생한 채권금액을 차감한 금액이 남아있다면, 그만큼은 일반채권자의 몫이 되므로 사해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부동산 시가가 5억 원인 상황에서
- 근저당권으로 담보되는 채권이 4억 원이라면,
→ 남은 1억 원은 일반채권자의 몫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사해행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 반면, 근저당권으로 담보되는 채권이 5억 5천만 원이라면,
→ 시가를 초과하므로, 그러한 부동산을 양도하였다고 하더라도 일반채권자의 손해는 없고 사해행위도 되지 않습니다.
공동저당이 걸려 있는 경우는?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공동저당의 경우입니다.채무자의 여러 부동산에 저당이 동시에 설정된 경우, 각 부동산이 부담하는 채권액은 가액 비례로 안분됩니다(민법 제368조 참조).
그러나 일부 부동산이 물상보증인의 소유라면, 물상보증인은 채무자에 대해 구상권을 갖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더 큰 부담이 생기게 됩니다. 대법원은 이 경우 채무자 소유 부동산 전체에 대해 피담보채권액 전액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2008. 4. 10. 선고 2007다78234 판결
공동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여러 개의 부동산 중 일부가 처분된 경우, 그 피담보채권액은 원칙적으로 민법 제368조의 규정취지에 비추어 공동저당권의 목적으로 된 각 부동산가액에 비례하여 공동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을 안분한 금액으로 보아야 할 것이나,
여러 개의 부동산 중 일부는 채무자 소유이고, 일부는 물상보증인 소유인 경우에는 물상보증인이 민법 제481조, 제482조의 규정에 의한 변제자대위에 의하여 채무자 소유 부동산에 대하여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채무자 소유 부동산에 관한 피담보채권액은 공동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 전액으로 봄이 상당하다.
결론적으로 사해행위 취소 가능한 경우는?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경우 사해행위 취소가 가능합니다.
- 부동산시가 > 실제 피담보채권액: 부동산의 잔여가치가 남아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 사해행위 취소 가능
- 부동산시가 ≤ 실제 피담보채권액: 사실상 부동산의 가치가 남아 있지 않아 일반채권자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사해행위가 아님
- 임금채권 등 우선권 있는 채권자 있는 경우: 일반채권자보다 우선변제권을 갖는 채권자는 취소 청구 가능
맺음말: 사해행위는 “남은 가치”가 있어야 성립한다
많은 분들이 “부동산을 배우자에게 넘겼다”는 사실만 보고 사해행위로 오해하지만, 해당 부동산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면 실제 가치를 판단해야 법적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시가와 피담보채권액을 비교해 잔여가치가 있다면 그 범위 내에서만 사해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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