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이 빚을 많이 진 상태에서 부모의 유산을 포기한다면 그 상속인의 채권자는 어떤 심정일까요?
그 채권자는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손을 놓아야 할까요?
상속포기가 과연 채권자를 해치는 행위라면 이를 법적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요?
제가 이런 상황에 놓인 채권자라고 하면 속이 타들어갈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질문들은 많은 일반인들이 헷갈려하는 사해행위 취소제도의 중요한 포인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한 글을 써 보겠습니다.
상속포기와 채권자취소권의 관계
우리 민법 제406조는 채무자가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로서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채권자가 이를 법원에 취소 및 원상회복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사해행위 취소권이라고 하며, 채무자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빼돌려버린 경우 등에서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민법 제406조 제1항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나 전득한 자가 그 행위 또는 전득당시에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렇다면 "상속포기"도 여기에 포함될까요?
상속포기는 상속인이 상속의 효력을 소멸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의사표시를 말하며, 상속의 포기를 하려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이는 상속인이 되어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하는 것과 구별됩니다.
그렇다면 상속포기도 채권자취소권 행사의 대상이 될까요?
대법원의 판단은 “No”
대법원은 상속포기가 채권자취소권 행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상속포기는 단순한 재산 처분이 아니라 ‘상속인의 지위 자체를 소멸’시키는 인격적 결단이라는 점.
- 채권자가 상속포기까지 취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면 상속인의 확정, 후순위 상속자의 권리 등 상속제도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는 점.
- 실제로 상속포기 이후에도 채무자의 재산 상태가 현저히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면, 채권자의 손해가 반드시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입니다.
즉, 상속을 원천적으로 포기한 경우에는 재산권 목적의 법률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해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
하지만 상속재산 분할협의에서의 포기는 다르다
그렇다면 채무자가 아예 상속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상속인들 간 분할 협의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일부러 포기하거나 줄여 받은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로 보아,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다29119 판결 등)
특히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유일한 상속재산인 부동산을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몰아주고 대신 현금 등 쉽게 소비되는 재산만을 선택했거나, 자신의 상속분 전체를 포기한 경우라면, 이는 실질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줄이는 행위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채권자가 법원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으며, 포기한 범위 중 "구체적 상속분"에 미달하는 부분만큼을 사해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상속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사실
- 상속을 포기하는 행위는 채권자취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상속을 포기하려면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고해야 한다.
- 그러나 상속을 받은 후 분할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일부러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취소될 수 있다.
- 구체적 상속분보다 적게 받았다면 그 차액만큼은 사해행위로 보아 법원 판결을 통해 취소 및 원상회복 될 수 있다.
맺음말
이번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상속은 더 이상 단순한 가족 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채무자가 상속과 관련한 결정을 할 때는 그에 따른 채권자의 법적 권리 침해 여부까지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상속재산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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