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를 내고 범칙금을 냈는데, 또 처벌받는다고요?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합니다. 만약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해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다면, 범칙금을 내고 마무리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사고 직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어떤 운전자들은 “범칙금을 냈는데 왜 또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곤 하지만, 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2. 안전운전의무 위반 vs 도주행위, 무엇이 다른가
운전자라면 꼭 알아야 할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안전운전의무 위반: 도로교통법 제48조 제1항은 운전자가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등을 정확하게 조작함음 물론 다른 사람에게 위험과 장해를 주는 속도와 방법으로 운전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규정합니다. 예를 들면, 급가속이나 급정거, 무리한 차선변경, 방향지시등 미사용 등 예측불가능한 운전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안전운전의무에 위반하면 대개 과태료나 범칙금으로 처리됩니다. (도로교통법 제156조, 제162조)
범칙금 통고처분을 받고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벌 받지 않습니다. (도로교통법 제164조)
도로교통법 제48조(안전운전 의무)
①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차 또는 노면전차의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그 밖의 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하여야 하며, 도로의 교통상황과 차 또는 노면전차의 구조 및 성능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위험과 장해를 주는 속도나 방법으로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도로교통법 제164조(범칙금의 납부)
③ 제1항이나 제2항에 따라 범칙금을 낸 사람은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벌 받지 아니한다.
도주행위(뺑소니): 사고 후 피해자에게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자리를 이탈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에 따라 형사처벌, 즉 징역형 또는 고액의 벌금형이 부과됩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
자동차등의 교통으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자동차등의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피해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도로교통법 제48조 제1항의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하여 사고를 낸 후,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주행위까지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고운전자가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대해 범칙금을 납부한 다음 "나는 범칙금을 납부했고, 범칙금을 낸 경우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벌 받지 않는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으니까 뺑소니 행위도 면책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안전운전의무 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그것이 뺑소니까지 이어질 수는 있지만, 안전운전의무 위반과 뺑소니는 별개의 행위이고 별개의 범죄입니다. 즉, 두 행위는 법률적으로 전혀 다른 범죄이며, 각각의 구성요건과 처벌 규정이 따로 존재합니다.
3. 대법원 판례로 확인된 법리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도 마찬가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A는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일으킨 후 도주했으며,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범칙금을 납부한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A를 뺑소니로 기소했지요. A는 이미 범칙금을 납부했고, 범칙금을 납부한 경우에는 다시 처벌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니까 검찰의 기소는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심 판결은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대해 범칙금을 납부하였다면 사고 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중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게 면소판결을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A의 손을 들어준 것이죠. 안전운전의무 위반행위와 도주행위를 동일한 행위로 본 것입니다. 원심은 두 범죄가 하나의 행위로 발생한 것이어서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안전운전의무 위반행위와 도주행위는 별개의 행위이고 별개의 범죄라는 것이죠. 법률적 용어로 두 개의 범죄는 실체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도주행위에 대해 별도로 처벌하는 것은 이중처벌이 아니라 각각 다른 범죄에 대해 따로 처벌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1993. 5. 11. 선고 93도49 판결
차의 운전자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라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함과 아울러 물건을 손괴하고도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도주한 때에는, 같은 법 제156조 제1호 소정의 제48조 제1항 위반죄(안전운전의무위반)와, 같은 법 제148조 소정의 죄(사고후미조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도주차량)가 모두 성립하고, 이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와 물건손괴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제148조 소정의 죄는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상상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고, 위 2개의 죄와 같은 법 제156조 제1호 소정의 제48조 제1항 위반죄는 주체와 행위 등 구성요건이 다른 별개의 범죄이므로 실체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다.
4. 교훈: 사고 후 구호조치와 신고는 필수입니다
사고 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도주행위는 명백한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사고의 원인인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대해 범칙금을 냈다는 이유로 형사책임까지 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미한 사고든 중대한 사고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도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다음을 기억하세요:
- 사고가 났다면 즉시 정차하고 상황을 파악하세요.
- 사람이 다쳤다면 즉시 119나 경찰에 신고하세요.
- 상대방이 없더라도 연락처를 남기고 경찰에 자진신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블랙박스 자료를 저장하고 가능하다면 목격자도 확보해두면 좋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법적 분쟁의 소지를 줄이고, 무엇보다 도주범으로 오인받는 위험을 방지합니다.
5. 맺음말: 범칙금 냈다고 도주행위까지 면책되지는 않습니다
교통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대응이 오히려 더 큰 법적 책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범칙금을 냈으니 끝났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법은 안전운전의무 위반과 도주행위를 각기 독립된 범죄로 판단하고, 각각 처벌합니다.
현장에서 침착하게 구호조치와 신고를 한다면, 불필요한 형사처벌의 위험을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범칙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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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칙행위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의 법률관계: 대법원 판례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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