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를 위반하여 사고를 내고 그 사고로 인적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운전자의 대부분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 교통법규 위반 행위에 대한 범칙금이나 벌점은 어떻게 될까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될까요? 범칙금을 내지 않아 공소제기가 되어 형사절차를 밟게 될 경우 그러한 공소제기가 법률위반이 될까요? 이러한 쟁점을 다룬 최근의 대법원 판례가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목차
- 사실관계
- 쟁점
- 범칙행위와 범칙자
- 범칙자에 대한 범칙금 통고처분
- 원심 판단
- 대법원 판단
- 맺음말
1. 사실관계
운전자 A 차량과 피해자 B 차량 사이에 발생한 교통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➀ 운전자 A의 진로변경방법 위반(도로교통법 제19조 제3항)을 이유로 범칙금 3만원 통고처분을 하였고, ➁ 위 법규위반 및 인적피해 발생을 이유로 면허벌점 20점 부과하였으며, ➂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점에 관하여는 운전자 A의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불입건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운전자 A는 범칙금을 납부하였다가 이후 면허벌점 20점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납부한 범칙금을 회수하였습니다. 경찰은 이에 피고인의 범칙금 미납을 이유로 즉결심판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즉결심판청구를 기각하였고, 이후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가 운전자 A에 대하여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약식명령을 청구하였고, 운전자 A는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2.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종합보험 등에 가입되어 있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 해당 교통사고의 ‘과실’에 해당하는 진로변경방법 위반 등을 이유로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의해 처벌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그 일부를 따로 분리하여 사고의 원인이 된 가벼운 과실(이 사건에서는 진로변경방법의 위반)만을 별도로 기소한 것이 정당한 기소인지 여부였습니다.
운전자 A로서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의해 자신의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자신을 기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을 것이고, 반면 검찰의 입장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교통법은 별개의 법률이므로,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에 대하여는 별개로 분리하여 기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겠지요. 우선 도로교통법은 범칙행위와 범칙자, 통고처분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3. 범칙행위와 범칙자
범칙행위란 법규를 위반한 행위로 주로 경미한 범죄에 해당하며, 형사처벌 대신 행정적 제재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도로교통법은 제156조 또는 제157조의 각 호에 해당하는 위반행위를 범칙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호위반, 주정차 위반, 속도위반 등 대부분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행위지요. 경미한 위반에 대해 신속하게 제재를 가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범칙행위를 한 사람을 범칙자라고 부르며, 범칙자에게는 범칙금 납부통고서가 발부됩니다. 그런데 신호위반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호위반이 교통사고로 이어져 인적피해나 물적피해가 발생하게 된다면 범칙금 수준을 뛰어넘게 되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이 경우에는 도로교통법 제162조 제2항에 따라 범칙자 개념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에도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이른바 12대 중과실이 아닌 경우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되지요. 이 경우에는 다시 범칙자의 개념에 들어오게 됩니다.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범칙자로서의 책임은 묻겠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도로교통법 제162조 제2항
이 장에서 “범칙자”란 범칙행위를 한 사람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말한다.
1. 범칙행위 당시 제92조제1항에 따른 운전면허증등 또는 이를 갈음하는 증명서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경찰공무원의 운전자 신원 및 운전면허 확인을 위한 질문에 응하지 아니한 운전자
2. 범칙행위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 다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제2항 및 제4조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상죄ㆍ중과실치상죄 또는 이 법 제151조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아니하게 된 사람은 제외한다.
결국 범칙행위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범칙자에서 제외되나, 다만, 업상과실치상죄, 중과실치상죄, 업무상과실·중과실재물손괴죄(도로교통법 제151조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게 된 사람은 범칙자에 해당하게 됩니다. 즉 종합보험 가입 등으로 인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될 경우 범칙자에는 해당되게 됩니다.
4. 범칙자에 대한 범칙금 통고처분
한편 범칙자에 해당하게 될 경우 범칙행위의 종류 및 차종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해야 하며, 경찰은 범침금 납부 통고처분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차의 진로를 변경하려는 경우에 그 변경하려는 방향으로 오고 있는 다른 차의 정상적인 통행에 장애를 줄 우려가 있을 때에는 진로를 변경하여서는 안 되는데(도로교통법 제19조 제3항),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승용자동차 운전자에게는 3만원의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발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별표 8 참조)
만약 범칙금을 내지 않을 경우 범칙금 통고처분을 불이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경찰서장 등은 지체 없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하고(동법 제165조 제1항), 즉결심판에서 판사가 결정으로 즉결심판의 청구를 기각한 경우 경찰서장은 지체 없이 관할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의 장에게 송치하여야 합니다.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5조 제2항)
5. 원심 판단
원심은 검사가 피고인의 위와 같은 진로변경방법 위반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도 피고인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교통사고와 관련하여서는 아무런 기소를 하지 아니하고, 위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 진로변경방법 위반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하여만 기소한 것은, 가벼운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일정한 조건 하에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의 취지에 반하여 그에 흡수되는 ‘과실’에 해당하는 행위만 따로 분리하여 기소하는 것이어서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라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하였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7조(공소기각의 판결)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2.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일 때
결국 하급심 판단은 검사의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인데, 어떠한 법률규정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대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취지를 원용하고 있습니다.
6. 대법원 판단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종합보험 가입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될 경우 통고처분의 대상인 범칙자에는 해당하게 되며, 범칙자는 법률 규정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해야 하며,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공소제기가 이루어져 형사절차를 밟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절차는 모두 도로교통법의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법률위반이 아니며 공소제기는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24. 10. 31. 선고 2024도8903 판결】
피고인은 진로변경방법 위반의 범칙행위로 교통사고를 일으켰으나 종합보험 가입으로 벌을 받지 아니하게 되었으므로 도로교통법 제162조 제2항 제2호 단서에 따라 통고처분의 대상인 ‘범칙자’에 해당하고, 통고처분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하면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처벌받지 않게 되는데(도로교통법 제164조 제3항), 피고인이 면허벌점 부과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이미 납부한 범칙금을 회수한 후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한 결과 도로교통법과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에 따라 후속절차가 진행되어 이 사건 공소제기에 이르렀으므로, 이 사건 공소제기 절차는 관련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서, 거기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의 취지에 반하는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7. 맺음말
위 판례는 종합보험 가입이 사고로 인한 형사책임을 면제해 줄 수는 있지만, 이는 교통사고로 인한 인적피해 내지 물적 피해와 관련된 형사책임의 면제일 뿐이고, 도로교통법이 규정한 범칙자로서의 책임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즉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른 형사책임의 면제가 도로교통법 위반의 책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양자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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