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하여 수도요금이 포함된 아파트관리비를 4개월간 체납하였습니다. 그런데 A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자치회규칙에 정해진 바에 따라서 수도계량기를 떼어 가겠다고 합니다. 아파트 관리비 연체에 대해 수도계량기를 떼어가 단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 행위일까요?
아파트관리비를 체납한 것은 이유야 어찌 되었든 A의 과오가 맞습니다. 하지만 단전이나 단수를 하게 되면 입주자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단전ㆍ단수 조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수도계량기를 떼어간 행위를 위법하다고 본 사례
이와 관련하여 관리비를 1개월 이상 연체 시 수도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자치회 규칙을 내세워 수도료가 포함된 관리비를 연체한 아파트주민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 수도계량기를 떼어가 재물손괴죄 등 혐의로 기소된 아파트자치회장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 (대법원 2000. 10. 27. 선고 2000도3477 판결)
당시 피고인 측은 위법성조각사유로 정당행위를 주장하였는데, 대법원은 법규에 위반되는 행위가 정당행위라 되려면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것이어야 하고, 관리비를 안 냈다고 계량기를 떼간 것은 그러한 정당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판례에 비추어 보면, 위 사안에서도 A가 수도료가 포함된 아파트관리비를 4개월 정도 연체하였다고 하여도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수도계량기를 떼어 가는 방법으로 단수조치를 행하는 것은 위법한 것으로 보입니다.
형법상 정당행위란?
그렇다면 대법원이 단수 조치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한 “정당행위”는 무엇일까요? 형법상 정당행위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일종으로서 어떠한 행위의 위법성을 없애 주는 역할을 합니다.
형법 제20조(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법령에 의한 행위
우선 법령에 의한 행위란 법령에 근거하여 정당한 권리 또는 의무로서 행하여지는 행위를 말합니다. 법령에 근거한 행위를 위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여기서의 법령이란 실정법률 이외에 행정규칙이나 명령 등도 포함됩니다.
업무로 인한 행위
다음으로 업무로 인한 행위란 직업의무의 정당한 수행을 위해 합목적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업무란 사람이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반복의 의사로 행하는 사무를 말합니다. 업무는 사회상규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하며, 업무가 사회상규에 위배되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습니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의 지배적인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원칙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판례는 사회상규라는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2758 판결
형법 제20조가 정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어떠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정 아래에서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고찰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2도5077 판결,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4도7302 판결 등 참조).
결국 형법상 정당행위가 인정되려면 다음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목적이 정당해야 합니다.
- 수단의 상당성: 행위의 수단이 상당해야 합니다.
- 법익균형성: 그 행위로 인해 보호되는 이익과 침해되는 이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 긴급성: 행위의 긴급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 보충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어야 합니다.
관리규약에 따른 단전ㆍ단수 조치의 적법 요건
한편 관리규약에 따른 단전ㆍ단수 조치가 적법하기 위한 요건을 판시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단전ㆍ단수 조치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입주자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야 위법하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사회통념”과 “상당성”의 개념을 위법성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6. 6. 29. 선고 2004다3598,3604 판결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적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조치가 관리규약을 따른 것이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조치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그로 인하여 입주자가 입게 된 피해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할 것인데, 이 사건의 경우 원고에 대하여 행하여진 당초의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원고가 이를 다투며 관리비 지급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므로, 그런 와중에 3개월이 경과됨으로써 3개월 이상 관리비 연체라는 관리규약상의 요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종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피고의 위법한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그 시점부터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행위로서 적법행위로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전조치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한편 시장 관리규정에 따른 단전조치가 업무방해죄의 위법성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도 있습니다.
대법원 1994. 4. 15. 선고 93도2899 판결
피고인이 이 사건 시장번영회의 회장으로서 시장번영회에서 제정하여 시행 중인 관리규정을 위반하여 칸막이를 천장에까지 설치한 일부 점포주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하여 위력으로써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이 이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단전 그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 관리규정에 따라 상품진열 및 시설물 높이를 규제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확립하기 위하여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한 것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비록 전기의 공급이 현대생활의 기본조건이기는 하나 위 번영회를 운영하기 위한 효과적인 규제수단으로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되고 있는 관리규정에 따라 전기공급자의 지위에서 그 공급을 거절한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것이고, 나아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법익권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갖춘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각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 바, 이를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 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사례에서는 법원은 단전조치의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성이 인정되고, 기타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단전ㆍ단수 조치가 위법성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안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보이며, 관리규약에 단전ㆍ단수 조치가 규정되어 있다고 하여 섣불리 단전ㆍ단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험해 보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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