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저는 이게 범죄가 되는지 몰랐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B는 법정에서 "이 법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 처벌받을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몰랐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려는 주장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은 이러한 주장을 얼마나 받아들일까요?
법치국가에서는 누구든 법을 지켜야 하며,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자신의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처벌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법률의 착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법을 몰랐다는 주장이 통할 수 있는 경우와 통할 수 없는 경우는 어떻게 구별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법률의 착오"와 "법률의 부지"를 구별하고, 대법원 판례를 통해 그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위법성의 인식
범죄가 성립하려면 여러 요소가 필요하며, 그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위법성의 인식입니다. 위법성의 인식이란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공동사회의 질서에 반하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위법성의 인식이 있어야 행위자를 법적으로 비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법성의 인식은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지만 위법성의 인식은 어떠한 행위가 사회정의와 조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면 충분하며, 구체적으로 어느 법규정에 위반된다는 점까지 인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법원 1987. 3. 24. 선고 86도2673 판결
범죄의 성립에 있어서 위법의 인식은 그 범죄사실이 사회정의와 조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족하고 구체적인 해당 법조문까지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금지착오
그런데 자신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착각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될까요? 즉 착오에 의해 위법성의 인식이 없는 경우입니다. 전문용어로는 “금지착오”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형법 제16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16조(법률의 착오)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 조항과 관련하여 단순한 "법률의 부지"는 형법 제16조에서 말하는 법률의 착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률이 있는지 몰랐다"라는 항변은 형법 제16조가 규정하는 법률의 착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대법원은 형법 제16조가 적용되는 범위를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대법원 1985. 4. 9. 선고 85도25 판결
형법 제16조에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한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법률의 부지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행위이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이다.
법률의 부지
일반적으로 법조계에서는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금지규범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항변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만약 법률의 부지가 용서될 수 있다면 너도나도 해당 법률규정을 몰랐다고 항변할 것이고, 결국 법치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사법정에서 “그런 법률규정이 있는지 몰랐다”라는 항변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습니다. 유죄판결을 피할 수 없게 되지요. 다음은 대법원이 법률의 부지로 판단한 사례들입니다.
대법원 1985. 4. 9. 선고 85도25 판결
유흥접객업소의 업주가 경찰당국의 단속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만 18세 이상의 고등학생이 아닌 미성년자는 출입이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더라도 이는 미성년자보호법 규정을 알지 못한 단순한 법률의 부지에 해당하고 특히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적극적으로 그릇 인정한 경우는 아니므로 비록 경찰당국이 단속대상에서 제외하였다 하여 이를 법률의 착오에 기인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도1566 판결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건축법상의 허가대상인 줄을 몰랐다는 사정은 단순한 법률의 부지에 불과하고 특히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적극적으로 그릇 인식한 경우가 아니어서 이를 법률의 착오에 기인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도62 판결
부동산중개업법 제3조 제2호에 규정된 중개대상물 중 “건물”에는 기존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장차 건축될 특정의 건물도 포함된다고 볼 것이므로, 아파트의 특정 동, 호수에 대하여 피분양자가 선정되거나 분양계약이 체결된 후에는 그 특정아파트가 완성되기 전이라 하여도 이에 대한 매매 등 거래를 중개하는 것은 “건물”의 중개에 해당한다. 부동산중개업자가 아파트 분양권의 매매를 중개하면서 중개수수료 산정에 관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잘못 해석하여 법에서 허용하는 금액을 초과한 중개수수료를 수수한 경우가 법률의 착오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률의 착오
결국 형법 제16조에서 말하는 “법률의 착오”에는 “법률의 부지”가 포함되지 않으며 양자는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법 제16조에서 말하는 법률의 착오는 행위자가 금지규범의 존재 자체는 인식하고 있으나 그 규범이 무효라고 잘못 판단한 경우(효력의 착오) 또는 행위자가 금지규범의 존재 자체는 인식하고 있으나, 금지규범을 너무 좁게 해석하여 자신의 행위는 허용된다고 믿는 경우(포섭의 착오)를 의미한다고 이해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률의 부지와 법률의 착오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며, 그 구별기준도 명확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음은 대법원이 법률의 착오로 판단하고, 그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 사례들입니다.
대법원 1976. 1. 13. 선고 74도3680 판결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공포 당시 기업사채의 정의에 대한 해석이 용이하지 않았던 사정하에서 겨우 국문 정도 해득할 수 있는 60세의 부녀자가 채무자로부터 사채신고권유를 받았지만 지상에 보도된 내용을 참작하고 관할 공무원과 자기가 소송을 위임하였던 변호사에게 문의 확인한 바 본건 채권이 이미 소멸되었다고 믿고 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고하여야 할 기업사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신고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를 벌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5. 22. 선고 91도2525 판결
행정청의 허가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받지 아니하여 처벌대상의 행위를 한 경우라도,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허가를 요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알려 주어 이를 믿었기 때문에 허가를 받지 아니한 것이라면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착오를 일으킨 데 대하여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처벌할 수 없다.
결국 법률의 착오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란 일반적으로 ① 법률전문가나 관청의 의견을 신뢰한 경우, ② 모순되는 판결이 있는 때에는 상급심의 판결을 신뢰한 경우와 동급법원의 판결 중에는 새로운 판결을 신뢰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맺음말
요약하자면, 형사절차에서 법률의 부지는 선처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처벌규범을 몰랐다는 이유로 선처를 해 주게 되면 너도 나도 "나는 이런 법률이 있는지 몰랐다"라고 항변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법질서는 붕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률의 착오, 즉 법률을 잘못 이해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선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률전문가나 관청의 의견을 신뢰했거나, 기존 판례를 따랐다면 정당한 이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법을 모른다고 해서 처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오해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면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잘 모를 경우에는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말은 법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법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준수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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