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A 씨는 이웃들의 건강을 위해 무료로 수지침을 놔주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민간요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수지침이 특정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학으로 익힌 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시술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A 씨의 수지침 시술을 목격한 사람이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결국 신고까지 이어졌고, A 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A씨처럼 한의사 면허 없이 무료로 수지침을 시술하는 행위는 정말로 불법일까요? 단순한 이웃 간의 호의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요? 대법원 판례와 형법상 정당행위 개념을 통해 이에 대한 법적 쟁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의료법 규정
우선 의료법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합니다.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①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1. 외국의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로서 일정 기간 국내에 체류하는 자
2.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한의학전문대학원, 종합병원 또는 외국 의료원조기관의 의료봉사 또는 연구 및 시범사업을 위하여 의료행위를 하는 자
3. 의학ㆍ치과의학ㆍ한방의학 또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교의 학생
의료법 제87조의2(벌칙)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 제27조제1항 …
의료행위의 개념과 침술행위
그렇다면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의료행위란 무엇이며, 침을 놓는 행위도 여기에서의 의료행위에 해당될까요?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1999. 3. 26. 선고 98도2481 판결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인데, 침술행위는 경우에 따라서 생리상 또는 보건위생상 위험이 있을 수 있는 행위임이 분명하므로 현행 의료법상 한의사의 의료행위(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된다.
대법원 2000. 4. 25. 선고 98도2389 판결
일반적으로 면허 또는 자격 없이 침술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 제25조의 무면허 의료행위(한방의료행위)에 해당되어 같은 법 제66조에 의하여 처벌되어야 하고(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도1842 판결, 1993. 1. 15. 선고 92도2548 판결 등 참조), 수지침 시술행위도 위와 같은 침술행위의 일종으로서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4도1297 판결 참조).
결국 침술행위도 의료행위에 해당하며, 수지침시술행위도 침술행위의 일종으로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의 수지침시술행위는 당연히 의료법위반으로 처벌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안에 따라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 인정되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 인정 기준
형법 제20조(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정당행위에 관한 법조문 중에는 특히 “사회상규”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상규란 무엇이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지 여부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 함은 법질서 전체의 이상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하고, 어떠한 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정당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권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결국 사회상규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상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사실관계를 분석하여 5가지 기준, 즉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모두 갖추었는지 여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지침시술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될 수 있는지 여부
그렇다면 의료법위반의 구성요건에 일응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수지침시술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일반인의 수지침시술행위도 원칙적으로는 의료법위반에 해당하지만, 여러 사정을 따져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될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대법원 2000. 4. 25. 선고 98도2389 판결
일반적으로 면허 또는 자격 없이 침술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 제25조의 무면허 의료행위(한방의료행위)에 해당되어 같은 법 제66조에 의하여 처벌되어야 하고, 수지침 시술행위도 위와 같은 침술행위의 일종으로서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며, 이러한 수지침 시술행위가 광범위하고 보편화된 민간요법이고, 그 시술로 인한 위험성이 적다는 사정만으로 그것이 바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나,
수지침은 시술부위나 시술방법 등에 있어서 예로부터 동양의학으로 전래되어 내려오는 체침의 경우와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일반인들의 인식도 이에 대한 관용의 입장에 기울어져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과 함께 시술자의 시술의 동기, 목적, 방법, 횟수, 시술에 대한 지식수준, 시술경력, 피시술자의 나이, 체질, 건강상태, 시술행위로 인한 부작용 내지 위험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개별적으로 보아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다.
실제 위 대법원 판례도 무면허 의료행위 의료법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정당행위를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 주목하면서 정당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 피고인의 수지침시술행위는 손등과 손바닥에만 하는 것으로서 피부에 침투하는 정도가 아주 경미하여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극히 적은 점
- 수지침시술은 1971년경 유태우에 의하여 연구, 발표된 이래 국민건강요법으로 이용되어 온 점
- 수지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고려수지요법학회는 전국 160개 지부를 통하여 전국에 걸쳐 수지침을 통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점
- 수지침시술은 누구나 쉽게 배워 스스로를 진단하여 자신의 손에 시술할 수 있고, 또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민간요법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
- 피고인은 수지침의 전문가로서 위 학회의 춘천시지회를 운영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수지침요법을 보급하고, 수지침을 통한 무료의료봉사활동을 하여 온 점
- 피고인으로부터 수지침 시술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 수지침(침의 총길이 1.9∼2.3㎝, 침만의 길이 약 0.7∼1㎜) 한 봉지를 사 가지고 피고인을 찾아와서 수지침 시술을 부탁하므로, 피고인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이 사건 시술행위를 한 점
결국 수지침시술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 인정되어 처벌받지 않을 것인지 여부는 구체적 사실관계가 어떠한지에 달려 있으며, 사안마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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