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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어떻게 입증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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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그 사람이 진짜 그런 의도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형법에서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행위만을 처벌하는 "목적범"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문제는 행위자의 목적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관심법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간접적인 정황 증거를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4년 대법원에서 내려진 한 판결은 목적범에서의 '목적'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바로 현역 장교 A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었는데요, 이 사건을 통해 목적범에서의 '목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정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현역 장교 신분인 A는 입대 전 중국을 여행하다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위대한 수령 ○○○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구입하여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장교로 입대한 A는 당직실에서 천안함 피격사건의 뉴스를 듣다가 옆에 있던 하사에게 군 훈련 중에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였고,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관련하여 그와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은 남한 군 당국의 책임이다.”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장교 A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였고, 군검찰은 그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으로 기소하였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죄는 이른바 이적행위를 할 목적을 요구하는 목적범이었는데, 재판과정에서는 A에게 그러한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관련 법률규정

우선 법률의 구성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ㆍ고무등)
제1항ㆍ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ㆍ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ㆍ수입ㆍ복사ㆍ소지ㆍ운반ㆍ반포ㆍ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ㆍ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죄는 결국 “제1항ㆍ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 이적행위의 목적이 인정되어야 성립하는 목적범입니다. 이러한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범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에게 이러한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판단할까요? 관심법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겠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결국 목적범에 있어서의 목적은 관련성 있는 간접사실들에 비추어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사실을 비중 있게 보느냐에 따라 목적 유무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등군사법원은 A에게 이적행위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등군사법원 판단

고등군사법원은 A가 이적행위를 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였다고 판단하여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판단의 구체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군사법원 2012. 7. 17. 선고 2011노258 판결
① 위 책자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서 규정한 이적표현물에 해당하고, ② 또한 피고인이 군 입대 전부터 대학 동아리 등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관련 학습을 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입각한 대안적 시각에서 근현대사 공부를 해 온 점, 피고인이 병사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군에 입대한 점, 피고인이 장교로 임관한 뒤에도 대한민국 군 당국의 입장이 아닌 지나치게 북한의 입장에 치우친 주장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책자를 취득하여 소지할 당시 피고인에게는 위 책자의 이적성에 대한 인식과 이적행위를 할 목적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

 

고등군사법원의 판단근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A가 소지한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
  • A가 입대 전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 관련 학습을 하였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관점을 가졌으며, 병사들을 의식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 A는 군복무 중에도 북한의 입장에 치우친 주장과 행위를 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 A에게 이적행위의 목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적행위의 목적을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 판단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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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2도9800 판결
① 문제의 책자를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나, ② 피고인이 신학대 동아리 등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학습하고 대안적 시각의 근현대사를 학습한 사실은 있지만, 피고인이 속했던 기관들은 기독교 청년들을 위한 교육기관일 뿐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와는 상관이 없었으며, ③ 피고인이 신학대를 졸업한 기독교인으로서 주체사상은 우상숭배를 암암리에 강요하는 타락한 사유체계를 가진 잘못된 사상임을 주장하고 있고, ④ 피고인이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관련해 발언한 것은 정치ㆍ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현역 장교로서 부적절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사정만으로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고 보기 어렵고, ⑤ 피고인이 여행 중 문제의 책자를 구입한 후 그 내용을 전파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기만 한 점 등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위 책자의 이적성을 인식하고도 이적행위 목적을 가지고 위 책자를 소지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대법원의 판단근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A가 소지한 서적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단순히 그 책을 소지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 A가 신학대에서 사회주의 및 대안 역사 관련 학습을 하기는 했지만, 이는 일반적인 학습 활동의 범주에 해당하며, 반국가단체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 A는 기독교인으로서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북한 체제를 찬양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 A의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 관련 발언은 정치적 견해의 표현일 수 있으며, 단순히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적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
  • 무엇보다 A가 소지한 책을 타인에게 배포하거나 적극적으로 전파한 정황이 없었다.

 

대법원은 목적범에 있어서 목적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법리도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2도9800 판결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죄는 제1, 3, 4항에 규정된 이적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ㆍ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ㆍ수입ㆍ복사ㆍ소지ㆍ운반ㆍ반포ㆍ판매 또는 취득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목적범임이 명백하다.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범죄 성립을 위한 초과 주관적 위법요소로서 고의 외에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므로, 행위자가 표현물의 이적성을 인식하고 제5항의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면 그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행위자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하며, 행위자가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고 제5항의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정해서는 아니 된다. 이 경우 행위자에게 이적행위 목적이 있음을 증명할 직접증거가 없는 때에는 표현물의 이적성의 징표가 되는 여러 사정들에 더하여 피고인의 경력과 지위, 피고인이 이적표현물과 관련하여 제5항의 행위를 하게 된 경위,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 여부 및 이적표현물과 피고인이 소속한 이적단체의 실질적인 목표 및 활동과의 연관성 등 간접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 2010. 7. 23. 선고 2010도1189 전원합의체 판결 등)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이번 판결은 목적범의 입증이 쉽지 않으며, 단순한 정황만으로 목적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앞으로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목적의 입증"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의견 개진과 이적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주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적은 단순한 고의와 다르다: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범죄의 성립요건이 되는 초과 주관적 요건으로, 단순한 고의와는 구별됩니다.
  • 목적은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 형사재판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므로, 행위자가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도 검사가 증명해야 합니다.
  • 추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피고인이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됩니다.
  •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행위자의 경력, 정치적 성향, 활동 내역, 이적단체 가입 여부, 표현물 소지의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맺음말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법원은 객관적 정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판단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형법상 목적범에서의 '목적'이 어떻게 인정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검사의 입증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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