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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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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는 포로시 행동요령 훈련의 실시를 예하 여단에 지시하였습니다. 해당 여단은 이 사건 훈련의 실시를 위해 별도의 전담 TF를 구성하였으며, TF의 공식적인 구성원은 이 사건 훈련의 실행을 담당하는 교관들이었습니다. 교관들은 계획하고 준비한 훈련내용을 보고서와 연구강의를 통해 여단장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훈련의 시행 과정에서 교관들은 통풍이 안 되는 두건을 피해자들의 얼굴에 씌우면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두건의 끈을 지나치게 조이게 묶었으며, 훈련 진행과정에서 피체험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교관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피체험자들 중 하사 2명이 질식으로 사망하고 나머지 인원들도 상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지요. 이 사건으로 교관들은 업무상과실치사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되어 각각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교관들을 감독하고 지원해 주어야 할 위치에 있었던 여단 작전참모 A중령과 여단 작전처 교육훈련계획장교 B 소령이었습니다.

 

군검찰은 이들도 업무상과실이 있다며 각각 기소하였습니다.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판결은 우리에게 어떤 점들을 시사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법원이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업무상과실과 인과관계의 법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심 군사법원 판단

1심 군사법원은 작전참모 A중령과 교육훈련계획장교 B소령에게도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이들에게도 업무상과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 2015. 2. 27. 선고 2014고13 판결
피고인들은 이 사건 훈련이 특전사의 일반 훈련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구체적인 상황별 대응 계획 수립 여부, 교관 및 지원 병력들의 각 상황별 임무 수립여부, 안전대책 수립여부 등을 확인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이를 방치하였고, 피고인들이 교관들에게 훈련에 대해 위임하였다고 하더라도 훈련감독 및 지원업무의 책임자인 피고인들은 교관들에 대한 지휘, 감독을 철처히 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였다.

 

고등군사법원 판단

하지만 고등군사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고등군사법원은 A중령과 B소령에게 업무상과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설사 이들에게 일부 업무상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해자들의 사망, 상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대법원도 이러한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2018. 7. 24. 선고 2016도1238 판결) 

고등군사법원 2015. 12. 29. 선고 2015노195 판결
여단 작전참모 및 교육훈련계획장교였던 피고인들은 위 TF의 공식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여단의 주무부서 참모로서 TF의 활동을 감독하고 지원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며, 이 사건 훈련을 감독하고 지원함에 있어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을 지울 정도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이 사건 사고는 교관들이 통풍이 안 되는 두건을 피해자들의 얼굴에 씌우면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두건의 끈을 지나치게 조이게 묶은 행위와 이러한 행위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반응을 무시한 행위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므로, 가사 피고인들이 이 사건 훈련을 감독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부 업무상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업무상과실과 피해자들의 사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판결의 시사점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업무상과실과 인과관계의 성립 요건입니다.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일부 과실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심과 2심 군사법원 판단의 차이점

1심 군사법원은 감독 소홀로 인해 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반면 2심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은 설령 피고인들에게 일부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과실과 결과발생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면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논리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인과관계의 중요성

법원이 이 사건에서 강조한 핵심은 인과관계의 단절입니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더라도, 그 과실이 실제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의 사망이 교관들의 직접적인 행위(두건을 과도하게 조이고 피해자들의 호소를 무시한 행위)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이 명확했기 때문에, A중령과 B소령의 과실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군사훈련에서의 지휘ㆍ감독 책임의 범위

이번 판결은 군 지휘ㆍ감독 계통에서 형사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보여줍니다. 군 조직은 명령과 보고 체계를 통해 운영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인원이 모든 사고에 대해 무조건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맺음말

군사훈련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단순한 법적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과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는 사안입니다. 이번 판결은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더라도 형사책임을 지려면 반드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 판결을 통해 군 지휘관과 참모진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더욱 철저한 계획과 감독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형사책임을 무한정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는 원칙도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그리고 군 조직이 안전한 훈련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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