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경기는 신체활동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팀워크를 강화하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기 도중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경우, 과연 법적 책임을 져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군대에서 이루어진 소프트볼 경기 중 발생한 사건을 통해,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자의 과실 책임이 어떻게 판단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지, 그리고 ‘허용된 위험의 법리’가 적용되는 경우는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사실관계
A는 대대 연병장에서 전투체육시간 중 대대장 주관 하에 간부들과 소프트볼 친선게임을 하였습니다. 차례가 되어 타석에 들어간 A는 투수가 던진 공을 치기 위해 알루미늄 배트를 휘두르다가 그만 잡고 있던 배트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배트는 20m 정도 날아가 다음 타자로 대기 중이던 피해자 B를 가격하였고, 그로 인해 B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군검찰은 A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과연 A에게 범죄가 성립할까요?
업무상과실치상죄란?
우선 군검찰이 기소한 업무상과실치상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범죄의 핵심 구성요건은 “업무상과실”입니다. 과실치상죄(형법 제266조)에 비하여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더 무겁게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업무”란 사람의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를 의미합니다.
업무상과실치상죄를 과실치상죄(형법 제266조)에 비하여 가중처벌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ㆍ신체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방지할 의무가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반인에 비해 그러한 결과발생에 대한 고도의 주의의무가 부과되거나 그 예견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한 때문입니다.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도5753 판결 등)
법적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피고인 A에게 “업무상과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세부적으로는 ① 이 사건에서의 소프트볼 경기가 과연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 말하는 “업무”에 해당하는지, ②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되는지가 쟁점입니다.
군사법원의 판단
1심 군사법원과 고등군사법원은 모두 피고인 A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A에게 “업무상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업무상과실”이 유죄의 확신이 들 만큼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소프트볼 경기의 업무성 여부
우선 이 사건 소프트볼 경기가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 말하는 “업무”인지 여부에 대하여 1심 군사법원은 소프트볼 경기가 부대의 장교와 부사관 간의 친선경기로 기획된 것으로 사고 발생 전후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일회적인 사무였다는 점을 근거로 소프트볼 경기의 업무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또한 소프트볼 경기가 체력단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체력단련은 군인의 업무이므로 소프트볼 경기도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의 “업무”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시각에 대하여 군사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체력단련 행위는 그 자체가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이를 행하는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에 미칠 위험성에 대한 고도의 주의의무를
부과시킬 필요가 있는 성격의 업무라고 볼 수 없다.
즉 일상적인 업무와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 말하는 업무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업무상과실이 있는 경우 과실치상죄보다 가중처벌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위 대법원 판례를 반영한 논리로 이해됩니다.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 말하는 업무는 “사람의 생명ㆍ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방지할 의무가 있는 업무”에 한정되며 체력단련행위 그 자체는 이러한 의미의 업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운동경기 참여자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 정도
한편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어느 정도의 주의의무를 가져야 할까요? 대법원은 경기규칙 준수 여부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점은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에도 반영되었습니다.
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도6940 판결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규칙을 준수하고 주위를 살펴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지만,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가 경기규칙을 준수하는 중에 또는 그 경기의 성격상 당연히 예상되는 정도의 경미한 규칙위반 속에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킨 것으로서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행위라면 과실치상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고등군사법원은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반영하여 피고인 A가 소프트볼 경기에 참여하면서 경기와 무관한 행동을 하였다거나, 혹은 경기규칙에 위반하여 사고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고등군사법원 2018. 6. 21. 선고 2017노428 판결
운동경기에 있어서 상해 등의 사고가 발생한 경우 운동하는 사림이 그 운동경기와 관계되지 아니한 다른 행동으로 인하여 사고를 일으켰다면 일응 그에게 과실이 있다고 할 것이지만, 그 운동경기의 규칙 등에 따라서 행동하였음에도 실력이 미숙한 등의 이유로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같이 경기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허용된 위험의 법리”에 따라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할 것인데, 이 사건 기록과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소프트볼 경기의 타자로서 경기와 무관한 행동을 했다거나, 또는 그 경기규칙을 위반하여 사고를 야기했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아니한 점을 보태어 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1심의 판단에 “업무상과실치상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허용된 위험의 법리란?
위 판례에서 원용하고 있는 허용된 위험의 법리란 현대 산업사회에서 위험을 수반하는 여러 형태의 경우에 행위자가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하였다면 이에 의하여 법익침해적 결과가 발생했을지라도 행위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위의 판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허용된 위험의 법리는 과실의 성립을 제한하는 기능을 합니다.
판결의 시사점
이 사건은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가 상해를 유발한 경우 과실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본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군인이 체력단련의 일환으로 소프트볼 경기를 한 것이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의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
법원은 단순한 체력단련 활동이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체력단련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책임을 가중하는 "업무"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2. 경기규칙 준수 여부가 과실 판단의 중요한 요소
법원은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가 경기규칙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과실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경기 규칙을 따랐고, 경기의 특성상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3. 허용된 위험의 법리 적용
법원은 소프트볼 경기가 일반적으로 허용된 위험의 범위 내에 있으며, 피고인이 경기 규칙을 준수한 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스포츠 경기 중 발생하는 부상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맺음말
운동경기는 본질적으로 신체적 접촉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활동입니다. 따라서 경기 참가자에게는 기본적인 주의의무가 요구되지만, 모든 사고에 대해 형사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판결에서 보듯이 경기규칙을 준수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는 "허용된 위험"의 범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적 방어책이 될 수 있습니다.
스포츠 활동을 할 때는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며, 만약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이 어떻게 판단되는지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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