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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업무상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고, 그 입증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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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바로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즉,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되려면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원칙의 적용이 항상 명확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업무상과실치상죄나 업무상과실군용물손괴죄와 같은 과실범의 경우, 법정에서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이 명확하게 입증되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군용항공기 사고 사건에서도 이러한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군검찰은 조종사의 과실을 주장하며 기소했지만, 군사법원은 결국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이 판결이 가지는 법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관계

A는 군용항공기 조종사입니다. 어느 날 A는 관찰비행을 마치고 항공기를 활주로에 착륙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항공기의 후방이 부양되고 기수가 좌편으로 회전되면서 항공기가 활주로에 전도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5명이 다치고 항공기를 비롯한 군용물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군검찰은 A가 항공기 착륙 과정에서 조종간을 중립 위치보다 2.5인치 가량 전방에 위치시키는 등의 과실이 있다며 A를 업무상과실치상죄, 업무상과실군용물손괴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군검사가 주장하는 A의 업무상과실이 제대로 입증되었는지 여부였습니다. A는 업무상과실치상죄, 업무상과실군용물손괴죄로 기소되었는데, 두 죄는 모두 업무상과실을 핵심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으며, A에게 유죄가 인정되려면 A의 "업무상과실"이 입증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군형법 제73조(과실범)
① 과실로 인하여 제66조부터 제71조까지의 죄를 범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군형법 제69조(군용시설 등 손괴)
제66조에 규정된 물건 또는 군용에 공하는 철도, 전선 또는 그 밖의 시설이나 물건을 손괴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사람은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군형법은 과실로 군용물을 손괴하는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합니다. 이는 일반 형법에는 없는 범죄이지요. 즉 형법에서는 고의로 재물을 손괴한 행위만을 범죄로 삼고 처벌하지만, 군형법에서는 과실로 군용물을 손괴한 경우에도 범죄로 인정하고 처벌합니다.

 

형사법에서 말하는 과실이란 정상의 주의를 태만히 함으로 인하여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정상의 주의를 태만히 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한편 이러한 과실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입니다.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도3711 판결)

 

군사법원의 판단

재판과정에서는 A에게 과연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는지가 다투어졌고, 결국 1심 군사법원과 고등군사법원은 모두 A의 업무상과실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범죄의 입증은 검찰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입증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결국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 2019. 4. 29. 선고 2019고19 판결
피고인이 착륙 후 조종간을 이 사건 항공기의 중립 위치보다 2.5인치 전방으로 이동시키고, AFCS를 OFF 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여 항공기 후방이 부양되고 항공기 기수가 좌편으로 회전하면서 이 사건 항공기가 활주로에 전도되어 승무원 및 군용물이 손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지만,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조종간을 이 사건 항공기의 중립 위치보다 2.5인치 가량 전방에 위치시켰다거나, 이로 인하여 항공기의 후방이 부양되어 전도되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과실을 구성하는 개별 사실들에 대한 입증책임은 군검사에게 있으며, 그 입증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도로 입증이 되지 않으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법리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갖도록 해 주기만 하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1심 재판부는 A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표현하면서도, 결국 그러한 유죄의 심증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고등군사법원도 1심 군사법원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검찰 측의 입증활동이 법원으로 하여금 유죄의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죠. 바꾸어 말하면 피고인 측은 검찰의 논리에 허점을 발견하고 피고인의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계속 주장하여 법관의 유죄 확신을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판결의 시사점

이 사건은 업무상과실이 문제 된 사건에서 검찰의 입증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원은 "강한 의심이 들지만,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얼마나 철저하게 입증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판결입니다. 이 판결이 가지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형사재판에서 증명책임은 검찰에 있다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과실범에 있어서는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통해 정상적인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2.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고 해서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검찰은 법관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과실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3. 과실범에 있어서의 변호 전략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검찰의 입증과정에서 허점을 찾아내어 "피고인의 과실이 아니라 다른 원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 측은 과실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맺음말  

업무상과실치상죄나 과실로 인한 군용물 손괴죄와 같은 범죄는 입증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군사법원에서는 군기 유지와 지휘 체계를 고려하여 과실 범죄를 적극적으로 처벌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보듯이 형사재판의 원칙은 무죄추정이며, 입증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에 있습니다.

 

따라서 과실 범죄로 기소된 경우라도 포기하지 말고 입증의 허점을 분석하고 변론을 전략적으로 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사건에서도 결국 법원은 "의심은 들지만,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는 형사재판에서 검찰의 입증책임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판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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