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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행정법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하는 경우에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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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연주 KBS 사장이 배임 혐의로 기소되면서 강제 해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검찰에 기소되고 직에서 해임된 가장 직접적인 명분은 "법인세를 너무 많이 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법인세 납부는 법원의 조정 권유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법원이 시키는 대로 세금을 냈기 때문에 기소되고 해임된 모양새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법원은 정연주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해임처분도 취소하였습니다.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기소가 잘못되었다며 검찰총장이 정연주 사장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분석하려는 대상은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처분을 취소한 법원 판결입니다. 이 판결에서는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하려는 경우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어 그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행정절차법이 적용되는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만약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법상의 절차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이는 무효사유인지 취소사유인지 등의 쟁점이 다루어졌습니다.

 

과연 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요? 판결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해당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관련 쟁점들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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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의 해임과정

재판과정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3KBS 사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자, 당시 대통령은 정연주 씨를 잔여 임기 동안 KBS 사장으로 임명하였고, 이후 정연주 씨는 20036KBS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 정식 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0611월 임기가 종료되었으나 KBS 이사회는 다시 정연주 씨를 사장으로 제청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승인하여 재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86~7월경 감사원은 KBS를 감사하였고, 그 결과 정연주 사장에게 부실경영, 인사전횡, 사업의 위법부당 추진 등의 문책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는 KBS 이사회에 정연주 씨의 해임 제청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KBS 이사회는 임시이사회를 열어 참석 이사 6명 전원의 찬성으로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제청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였습니다.

 

법적 쟁점

그러나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는 과정에서 행정절차법이 규정하는 처분의 사전통지, 의견진술기회 제공 등의 절차는 없었습니다. 또한 대통령은 해임처분을 하면서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연주 사장 측은 이 점을 문제 삼으며 해임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행정처분을 받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절차들!

행정기관으로부터 허가, 인허가, 면허 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또는 직접 신청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행정처분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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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과정에서는 과연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하는 과정에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어 처분의 사전통지(21), 의견진술 기회부여(22), 처분의 근거와 이유제시(23) 등의 절차가 준수되어야 하는지가 다투어졌습니다. 또한 행정절차법상의 절차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행정처분의 경우 무효사유인지 아니면 취소사유인지도 다투어졌습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해임처분 과정에서 정연주 사장이 처분 내용을 사전에 통지받거나 그에 대한 의견제출의 기회 등을 받지 못했고, 해임처분 시 법적 근거 및 구체적 해임사유를 제시받지 못해 해임처분은 위법하지만, 그 절차나 처분형식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볼 수 없어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한 해임처분을 하는 과정에서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된다는 판단입니다. 

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두5001 판결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행정절차법은 다른 법률에 특정한 규정이 있는 경우이거나 제3조 제2항 각 호에 해당하는 사항을 제외하고는 처분·신고·행정상 입법예고·행정예고 및 행정지도의 절차에 적용된다. 행정절차법 적용 예외 사유로 행정절차법 제3조 제2항 제9호는 “병역법에 의한 징집·소집, 외국인의 출입국·난민인정·귀화, 공무원 인사관계법령에 의한 징계 기타 처분 또는 이해조정을 목적으로 법령에 의한 알선·조정·중재·재정 기타 처분 등 당해 행정작용의 성질상 행정절차를 거치기 곤란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과 행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위 위임 조항에 따라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2조는 행정절차법 제3조 제2항 제9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병역법 등에 따른 징집 등에 관한 사항( 제1호), 외국인의 출입국 등에 관한 사항( 제2호), 공무원 인사관계법령에 의한 징계 기타 처분에 관한 사항( 제3호), 이해조정을 목적으로 법령에 의한 알선 등 처분에 관한 사항( 제4호), 조세의 부과·징수에 관한 사항( 제5호),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결·결정을 거쳐 행하는 사항( 제6호), 국가배상법 등에 따른 재결·결정에 관한 사항( 제7호), 교육·훈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생·연수생 등을 대상으로 행하는 사항( 제8호), 시험·검정의 결과에 따라 행하는 사항( 제9호),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외국인어업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의 행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하는 사항( 제10호), 특허법 등에 따른 사정·결정 등 처분에 관한 사항( 제11호)을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해임 절차에 관하여 방송법이나 관련 법령에도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고, 행정절차법의 입법 목적과 행정절차법 제3조 제2항 제9호와 관련 시행령의 규정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해임처분이 행정절차법과 그 시행령에서 열거적으로 규정한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해임처분에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한편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며,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 것인지를 판별할 경우 그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4두10968 판결, 대법원 2007. 9. 21. 선고 2005두11937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 사건 해임처분 과정에서 원고가 그 처분의 내용을 사전에 통지받거나 그에 대한 의견제출의 기회 등을 받지 못했고, 해임처분 시 그 법적 근거 및 구체적 해임 사유를 제시받지 못해 이 사건 해임처분은 위법하지만, 그 절차나 처분형식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볼 수 없어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피고의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행정절차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나 원고의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행정절차법 위반의 위법성 정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행정절차법 적용 여부: 행정절차법 제3조 제2항 제9호 및 시행령에 따르면, 병역 징집, 외국인의 출입국, 공무원 징계, 조세 부과 등의 특정한 사항에 대해 예외를 두고 있지만,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은 이러한 예외 사항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행정절차법이 적용됨. (이 사건에서는 방송법이나 다른 법령에 별도의 절차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에 따른 절차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해됨)
  • 행정절차법상 절차 위반의 법적 효과: 해임처분 과정에서 사전통지, 의견제출 기회부여, 처분의 근거와 이유 제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임처분은 위법하지만, 그러한 하자는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보기 어려워 당연무효가 아닌 취소사유에 해당함

 

맺음말

이번 사건을 통해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에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되며, 그 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해임처분이 위법하게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법원은 이러한 절차적 위반이 당연무효가 아니라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처분은 여전히 법적 안정성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장의 해임과 같은 중요한 행정처분에서는 법적 절차를 철저히 지켜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행정절차법 위반으로 인해 처분이 취소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향후 유사한 사례에서도 행정절차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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