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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법

도박자금으로 빌린 돈도 때로는 갚아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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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출신 가수 슈의 도박 파문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그녀는 상습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2019년에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문제는 민사사건이지요. 슈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준 사람이 대여금을 갚으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도박자금을 빌려준 사람은 당연히 빌린 돈을 갚으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슈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었지요.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를 방패 삼아 도박자금을 빌려준 사람이 대여금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는 논리였지요.

 

이 사건은 결국 법원으로 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슈의 도박자금을 둘러싼 대여금 소송 사건을 중심으로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민법 제103조에 따라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첩계약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법질서에는 중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즉 배우자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합니다(민법 제810). 따라서 아내가 있는 사람이 다른 여성과 첩 계약을 체결하고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은 무효입니다.

 

돈을 빌려주면서 이를 갚지 못할 경우 신체 일부를 떼 주겠다는 신체포기각서도 무효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돈을 빌리는 안토니오 사이에서도 동일한 이야기가 나오죠.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도박자금을 대여해 주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도박은 현행법상 불법입니다. 형사처벌 대상이지요. 이러한 도박을 원인으로 해서 도박자금을 빌려주기로 하는 계약은 무효입니다.

 

불법원인급여로 인한 반환청구 제한

민법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는 반사회적 법률행위로 무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상대방에게 어떠한 이익을 제공하였다면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언급한 첩계약의 사례에서 만약 남자가 첩에게 그녀가 거주할 아파트를 얻어 소유권을 이전해 주었다면, 나중에 그 아파트를 되돌려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법행위를 한 사람에게 법원이 도움을 줄 수는 없다는 의미이지요.

 

도박자금을 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자금을 빌려주기로 하는 계약은 무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자금을 빌려주었다면 나중에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반환청구에 법원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합법적인 도박을 하였다면?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불법이 아닌 도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원랜드 카지노에서의 도박입니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특별법에 따라 운영되는 카지노로 내국인도 출입이 허용되는 것에 비추어 강원랜드 도박을 위해 돈을 대여하는 금전거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창원지방법원 2012. 10. 10. 선고 201116145 판결)

 

슈의 도박 대여금 사건에서도 슈 측은 도박자금 대여행위가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도박자금을 빌려준 측에 반환청구권이 없다는 주장을 하였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문제의 돈이 슈가 파라다이스 카지노 인천공항점과 파라다이스카지노 워커힐에서 도박을 할 때 사용됐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는 이 카지노는 내국인이 했다면 불법이지만, 일본에서 출생한 슈는 일본 특별영주권자여서 합법적인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따라서 슈가 빌린 돈을 카지노에 썼더라도 이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원은 판단한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5. 27. 선고 2019가합530235 판결
부당이득의 반환청구가 금지되는 사유로 민법 제746조가 규정하는 불법원인이라 함은 그 원인 되는 행위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경우를 말한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77477 판결, 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3다41722 판결 등 참조).

이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대하여 본다. 먼저 피고가 원고로부터 차용한 돈으로 E에서 도박을 한 사실, 원고도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피고에게 돈을 대여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그러나 한편, 갑 제1, 2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로부터 차용한 돈으로 도박을 한 E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외국인 및 해외이주자의 출입이 허용되어있고, 피고는 일본에서 출생한 일본 특별영주권자이어서 피고가 위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 행위는 일반적인 도박행위와 달리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정을 알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설령 원고가 피고에게 도박 자금을 대여하여 피고의 도박행위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점만으로는 위와 같은 대여행위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므로, 이를 전제로 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피고는 도박 채무로 인하여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궁박한 상태에 빠져 있었고, 원고는 이를 알면서도 피고에게 도박자금을 대여하였으므로 위 대여는 무효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을 제2호증의 기재만으로는 피고가 궁박 상태에 빠졌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판결의 시사점: 반환청구권 인정 여부는 불법적 요소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음

결론적으로 불법적인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편에게 이익을 제공하였다면, 나중에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 법적 근거는 민법 제746조입니다.

 

그러나 당사자간의 금전대여행위에 어떠한 불법적인 요소도 찾을 수 없다면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빌려준 측은 대여금 청구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슈의 도박 대여금 소송 판결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다만, 슈의 도박 대여금 소송 판결에서도 적시된 바와 같이, 만약 슈가 도박 채무로 인하여 정신적ㆍ경제적으로 궁박한 상태에 빠져 있었고, 도박자금을 대여해 준 사람이 이러한 점을 알면서도 슈에게 도박자금을 대여하고 고리의 이자를 챙긴 사실 등이 입증되었다면 도박자금 대여행위 그 자체가 불법성을 띨 수 있으므로 결론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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