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B의 유인으로 내기바둑을 두기 시작하면서 그 자금이 부족할 때마다 내기바둑 상대였던 B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내기자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그 빌린 원금과 이자의 합계가 약 2,000만원에 이르렀고, A가 이를 제때 갚지 못하자 B는 즉시 변제하지 않으면 직장에 알리겠다고 하여 A는 그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B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B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A에게 접근하여 내기바둑을 이끌면서 자금도 빌려주고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A는 B에 대하여 위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을까요?
A와 B 모두 내기바둑, 즉 도박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A와 B 모두에게 불법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급여자인 A가 수익자인 B에게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는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해석과 적용 문제로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내기바둑 유인 사례를 바탕으로 대법원이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법리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위 조항에 따라 급여자와 수익자가 모두 불법적인 원인에 기초하여 재산거래를 하였다면 급여자가 수익자에게 그 이익의 반환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제746조 단서는 불법의 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경우에는 급여자의 반환청구를 허용하고 있네요.
대법원의 불법성 비교형량 법리
그런데 위 사례와 같이 급여자와 수익자 모두 불법적인 원인에 기하여 재산거래를 했지만,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훨씬 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도 급여자의 반환청구를 거부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부합할까요?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불법성 비교형량을 통해 급여자의 수익자에 대한 반환청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7. 10. 24. 선고 95다49530,49547 판결
민법 제746조에 의하면 급여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고 급여자에게 불법 원인이 있는 경우에는 수익자에게 불법 원인이 있는지의 여부나 수익자의 불법 원인의 정도 내지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큰지의 여부를 막론하고 급여자는 그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현저히 크고 그에 비하면 급여자의 불법성은 미약한 경우에도 급여자의 반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민법 제746조 본문의 적용이 배제되어 급여자의 반환 청구는 허용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급여자가 수익자에 대한 도박 채무의 변제를 위하여 급여자의 주택을 수익자에게 양도하기로 한 것이지만 내기바둑에의 계획적인 유인, 내기바둑에서의 사기적 행태, 도박자금 대여 및 회수 과정에서의 폭리성과 갈취성 등에서 드러나는 수익자의 불법성의 정도가 내기바둑에의 수동적인 가담, 도박 채무의 누증으로 인한 도박의 지속, 도박 채무 변제를 위한 유일한 재산인 주택의 양도 등으로 인한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훨씬 크다고 보아 급여자로서는 그 주택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현저히 크고 그에 비하면 급여자의 불법성은 미약한 경우에도
급여자의 반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민법 제746조 본문의 적용이 배제되어 급여자의 반환 청구는 허용된다.
요약하자면 대법원이 급여자의 반환청구권을 허용하기 위헤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훨씬 커야 한다.
- 급여자의 반환청구을 허용하지 않으면 공평과 신의칙에 어긋날 정도여야 한다.
위의 내기바둑 유인 사례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요건 충족을 인정한 것입니다.
- 수익자가 급여자를 내기바둑에 계획적으로 유인한 점
- 수익자는 내기바둑에서 사기적 행태를 보인 점
- 수익자는 도박자금 대여 및 회수 과정에서의 폭리성과 갈취성을 보인 점
- 급여자는 내기바둑에 수동적으로 가담한 점
- 급여자는 도박 채무의 누증으로 도박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점
- 결국 급여자는 도박 채무 변제를 위해 유일한 재산인 주택을 양도한 점
판례의 시사점
결국 “불법성 비교형량을 통한 급여자의 반환청구권 인정 법리”를 적용하려면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현저히 크다는 점에 대한 주장ㆍ입증이 성공해야 할 것입니다. 즉 불법성에도 그 경중이 있다는 점을 염두하면서 수익자와 급여자를 대조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자료의 수집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단순한 불법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이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급여자를 착취하고 이용하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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