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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에 대한 법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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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가 법적 책임 공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요. 특히, 문자 메시지 하나로 "보복협박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근 대법원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보복협박 혐의로 기소된 사립대 교수의 사건에서 흥미로운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떤 법적 쟁점을 담고 있었으며, 판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관계

사립대 교수로 근무하던 A 씨는 피해자 B 씨의 소개로 같은 대학 강사를 거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A 씨와 B 씨는 부동산 투자 문제로 얽히게 되었고, B 씨는 A 씨가 사기로 편취한 금액의 일부를 가져갔다며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A 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B 씨가 제출한 엄벌 탄원서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A 씨는 자신에 대한 엄벌을 탄원한 동료 교수 B 씨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수님 등이 작성한 탄원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 제가 인간관계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인간관계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E교수, F박사, G, H 등 제게 한 만큼 갚아 드리겠습니다. 화요일 날까지 답장 부탁드립니다. 화요일 날 연구실로 오전 중에 찾아뵙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A 씨는 B 씨의 연구실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다른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B 씨는 해당 문자를 두고 "보복 의도가 느껴져 공포를 느꼈다"며 이를 협박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A 씨를 다음과 같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협박)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게 전송함으로써 피고인은 보복의 목적으로 피해자의 탄원서 제출 등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형사기소되고, 교수직에서 직위해제되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은 것처럼 사립학교 교수 신분인 피해자로 하여금 피고인과 유사한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게 하는 조치를 취할 것처럼 피해자를 협박하였다."

 

관련 법률규정

검사가 적용한 보복협박죄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9 제2항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특가법상 보복협박죄"는 형법상의 협박죄보다 가중하여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요. 특가법상 보복협박죄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형사사건 관련성

우선 보복협박죄는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형사사건 관련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특가법상의 보복협박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보복목적

특가법상 보복협박죄는 목적범입니다. 즉 범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에게 일정한 목적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목적에는 다음의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두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는 인정되어야 범죄가 성립합니다. 

  • 고소ㆍ고발 등 수사단서의 제공, 진술, 증언 또는 자료제출에 대한 보복의 목적
  • 고소ㆍ고발 등 수사단서의 제공, 진술, 증언 또는 자료제출을 못하게 하거나, 고소ㆍ고발을 취소하게 하거나, 거짓으로 진술ㆍ증언ㆍ자료제출을 하게 할 목적

 

이러한 목적은 미필적 인식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행위자에게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은 불필요합니다. 행위자에게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행위자의 나이, 직업 등 개인적 요소, 범행의 동기 및 경위와 수단ㆍ방법, 행위의 내용과 태양, 피해자와의 인적 관계, 범행 전후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합니다. (대법원 2013. 6. 14. 선고 2009도12055 판결)

 

다음의 대법원 판례는 보복목적의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였고, 또한 피고인의 자백이 없을 경우 보복목적의 존재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하여 상세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특가법상 보복협박죄에서의 보복목적에 대한 증명책임 (2024. 5. 17. 선고 2023도10386 판결)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9 제1항 위반의 죄의 행위에게 보복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또한 검사가 증명하여야 하고, 그러한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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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목적 존재 여부의 판단기준 (2024. 5. 17. 선고 2023도10386 판결)
피고인의 자백이 없는 이상 피고인에게 보복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피해자와의 인적 관계, 수사단서의 제공 등 보복의 대상이 된 피해자의 행위에 대한 피고인의 반응과 이후 수사 또는 재판과정에서의 태도 변화, 수사단서의 제공 등으로 피고인이 입게 된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피고인과 피해자가 범행 시점에 만나게 된 경위, 범행 시각과 장소 등 주변환경, 흉기 등 범행도구의 사용 여부를 비롯한 범행의 수단ㆍ방법, 범행의 내용과 태양, 수사단서의 제공 등 이후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피고인과 피해자의 언행, 피고인의 성행과 평소 행동특성, 범행의 예견가능성, 범행 전후의 정황 등과 같은 여러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협박행위

특가법상 보복협박죄는 형법상의 협박죄에 대한 가중적 구성요건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협박행위는 존재해야 특가법상 보복협박죄 성립을 논할 수 있습니다. 협박은 해악을 고지하여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협박죄에서의 협박의 의미 및 판단기준 등에 대한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협박죄에서의 협박의 의미 및 판단기준 (2024. 5. 17. 선고 2023도10386 판결)
협박죄에서의 협박은 일반적으로 보아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고의는 행위자가 그러한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인식ㆍ용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협박죄가 성립되려면 고지된 해악의 내용이 ① 행위자와 상대방의 성향, ② 고지 당시의 주변 상황, ③ 행위자와 상대방 사이의 친숙의 정도 및 지위 등의 상호관계 등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한다. 

 

협박죄 성립에 있어서 사회통념 내지 사회상규의 고려 (2024. 5. 17. 선고 2023도10386 판결)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상대방에게 일정한 해악을 고지한 경우에도 그러한 해악의 고지가 사회의 관습이나 윤리관념 등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이거나 정당한 목적을 위한 상당한 수단에 해당하는 등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협박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법적 쟁점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1.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 협박에 해당하는가?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였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2. 보복의 목적이 인정되는가?
피고인 A의 행위가 피해자 B의 엄벌 탄원서 제출에 대한 보복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진 것인지 검토해야 합니다.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은 A 씨의 보복협박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은 A 씨의 보복협박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진 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습니다. 

 

1. 문자 메시지 내용의 추상성
문자 메시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해악이 예고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갈 만한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2. 피고인의 고의 및 보복 목적 증명 부족
보복협박죄가 성립하려면 검사가 피고인의 보복 목적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A 씨가 보복의 의도를 가지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3. 사회 통념에 비추어 용인 가능한 수준
해당 문자 메시지는 다소 감정적인 표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회 통념상 용인 가능한 수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의 시사점

이번 판결은 협박죄와 보복협박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법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해악의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문자나 메일에서의 표현이 협박죄로 인정되려면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메시지의 내용만으로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어떠한 법익에 어떠한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면 협박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에 대하여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협박죄가 인정될 만한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A 씨가 B 씨에게 학교법인 내 지위 등에 불이익을 줄 위치에 있지도 않아 해악의 실현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좌우할 수 있어 해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고지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보복협박죄에서 '보복 목적'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

특가법상 보복협박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협박죄의 성립은 물론 "보복목적"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보복목적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대법원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았을 때 A 씨에게 보복목적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검찰이 보복협박 혐의로 사건을 기소하려면 "보복 목적"에 대한 입증계획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말 한마디의 무게: 협박에서 보복협박까지

 

말 한마디의 무게: 협박에서 보복협박까지

"마음의 편지 쓴 놈들, 내가 찾아가서 반병신을 만들어버릴 거야."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단순히 겁을 주려는 협박일까요, 아니면 법적으로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보복협박일까요? 모든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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