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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무고죄를 피하는 방법: 정의로운 고발도 법적 함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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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분명 불법이야!”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거나, 타인의 비위를 목격했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의감을 발휘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추측이나 불충분한 정보로 고발을 했다가 오히려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무고죄는 단순히 거짓말로 타인을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정보와 섣부른 판단으로 타인의 비위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무고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타인의 잘못을 신고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디까지 확인해야 할까요? 여기 하나의 군사법원 판례를 통해 무고죄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

군인 신분인 A는 국민권익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민원을 신청하여 접수시켰습니다. 해당 민원은 현역 군인 B의 범죄혐의를 담고 있었고 B는 해당 혐의를 부인하였지요.

 

국민권익위원회 담당자는 이 민원을 국방부에 이첩하면서 A에게 여러 차례 국방부 이송을 안내하였고, 이에 대해 A는 권익위 담당자에게 민원을 이송하지 말라고 요청하였을 뿐, 이송할 바에는 차라리 민원을 취소해 달라거나 혹은 각하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해당 민원은 국방부 감사관실, 국방부 조사본부를 거쳐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결국 군인 B는 범죄혐의를 부인하면서 A를 무고죄로 고소하였습니다. 민원을 제기한 AB의 범죄혐의를 주장하였지만, 수사 결과 정작 사건 관련자들에게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의 추측에 근거하여 민원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군인 A에게 무고죄가 성립할까요?

 

무고죄의 관련 규정과 법리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형법 제156조는 무고죄를 규정하면서 이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고죄를 범하더라도 타인의 재판 또는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에 자백 또는 자수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무고죄의 구성요건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 목적: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 ② 행위: 허위사실의 신고, ③ 신고의 상대방: 공무원 또는 공무소.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 

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신고자에게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고죄에 있어서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은 허위신고를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그로 인하여 형사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결과발생을 희망하는 것까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5도2712 판결).

 

결국 누군가를 꼭 처벌받도록 하겠어라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내 신고로 인하여 타인이 형서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였다면 무고죄의 목적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무고죄의 성립범위가 넓어질 수 있는 지점입니다.

 

허위사실의 신고 

무고죄의 핵심은 허위사실을 신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위사실이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로서 그 신고된 사실로 인하여 상대방이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허위라는 점을 알면서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무고죄의 책임을 물어야겠지요. 문제는 객관적으로는 허위인데 신고자 본인은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경우입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어요.

 

【대법원 2000. 7. 4. 선고 2000도1908 판결】
객관적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도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하였을 때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여기에서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함은 신고자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신고사실이 허위라거나 또는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신고자가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관계에 의하여 신고사실이 허위라거나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한 신고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란 모든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 아니라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에 대하여 직권행사를 할 수 있는 해당 관서 또는 그 소속 공무원을 말합니다. 결국 여기에서의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란 형사처분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인 검사, 사법경찰관 및 그 보조자가 될 것이고, 징계처분의 경우에는 징계권자 또는 징계권의 발동을 촉구하는 직권을 가진 자와 그 감독기관 또는 그 소속 구성원을 말합니다.

 

법적 쟁점

위에서 언급한 사실관계에 무고죄의 법리를 비추어 보았을 때 두 가지 쟁점을 식별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무고죄의 구성요건은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허위신고를 하는 경우 성립합니다. 그런데 군인 A는 타인의 범죄혐의가 포함된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시켰지요. 이 경우에도 무고죄에서 말하는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한 신고에 해당될까요?

 

둘째, A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시킨 자신의 민원내용이 진실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결과 군인 A는 사건 관련자들에게 기본적인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민원을 제기한 것이 밝혀졌지요. 이 경우에도 무고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법원의 판단

이 사건은 A의 신분이 군인이었고 군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것이어서 군사법원에서 다루어졌습니다

 

1심 군사법원은 이 사건 민원내용이 형사고발, 범죄행위 등 형사절차를 전제로 신고하는 취지가 명시되어 있고, 국민권익위원회 담당자가 이 사건 민원을 국방부에 이첩하면서 A에게 여러 차례 국방부 이송 안내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 A는 권익위 담당자에게 민원을 이송하지 말라고 요청하였을 뿐, 이송할 바에는 차라리 민원을 취소해 달라거나 혹은 각하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아 결국 해당 민원은 국방부 감사관실, 국방부 조사본부를 거쳐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송되었다는 점을 토대로 A에게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하였습니다. A1심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고등군사법원 또한 이러한 결론을 유지하였습니다

 

A에게 허위사실을 신고한다는 점에 대해 고의가 있었는지도 문제되었지만, A는 사건 관련자들에게 제대로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의 추측에 근거하여 민원을 작성한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A는 민원을 제기하면서 민원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한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법리는 신고자가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관계에 의하여 신고사실이 허위라거나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위 대법원 판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무고죄의 고의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속마음인데 사람이 하는 재판에서 이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속세의 판사들에게는 이른바 궁예의 관심법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결국 객관적인 사실관계들을 토대로 사람의 속마음, 즉 범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것이죠. 인간이 하는 재판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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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피고인이 범의를 부인하는 경우 이러한 범죄의 주관적 요소가 되는 사실은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를 입증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

 

판결의 시사점

위 사례와 판례를 통해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낼 수 있겠습니다.

  •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한 민원의 이송 가능성: 군인도 권익위를 통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원내용이 타인의 비위사실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국방부를 통해 소속부대 소관부서로 이송됩니다. 그래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민원을 제기한다면 경우에 따라 무고죄의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의해야 하는 점입니다.
  • 타인의 범죄혐의를 제기하는 경우 허위일 가능성은 없는지 팩트체크를 면밀히 할 필요성: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신고사실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면 무고죄 성립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타인의 비위사실을 신고할 경우에는 관련자들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추측한 것인데 이를 진실인 양 확신하면서 신고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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