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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징계

군인은 헌법소원 제기 전 반드시 상관에게 건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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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두26401 전원합의체 판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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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그 행동이 정당한지 여부는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 특히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 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 전 상관에게 먼저 건의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전 건의의무 없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 법무관들이 징계를 받은 사건에서 군대 내 복종의무와 기본권 보장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군인의 기본권과 사전건의 의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1. 사건의 배경: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2. 징계의 법적 근거: 사전건의 의무의 존재

3. 대법원의 판단: 사전건의는 의무가 아니다

4. 소수의견: 사전건의 의무와 복종의무를 중시한 반대입장

5.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와 영향

 


 

1. 사건의 배경: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2008년 국방부장관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도서의 반입을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에 일부 군 법무관들은 이 지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상관에게 사전건의를 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바로 제기하여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글의 소재인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2두26401)은 군법무관들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군인이 상관에게 사전 건의를 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가 정당한지 여부였으며, 이는 사전 건의가 군인의 법적 의무인지에 대한 논의와 관련되었습니다. 

 

2. 징계의 법적 근거: 사전건의 의무의 존재

군에서는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의문을 품을 경우 먼저 지휘계통을 통해 건의를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군법무관들이 사전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상관의 명령에 대해 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는 이러한 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징계사유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사전건의 의무인데요, 이는 군인복무규율 제23조 제1항, 제24조 제1항, 제25조 제1항, 제4항의 규정 내용과 그 취지를 고려할 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군인복무규율의 주요 내용들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약칭: 군인복무기본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인복무규율 제23조 제1항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하며, 명령받은 사항을 신속ㆍ정확하게 실행하여야 한다.

군인복무규율 제24조 제1항
군에 유익하거나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 부하는 지휘계통에 따라 상관에게 건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상관이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결정을 하더라도 항상 상관의 의도를 존중하고 기꺼이 이에 복종하여야 한다.

군인복무규율 제25조 제1항
군인은 ~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현저히 불편 또는 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지휘계통에 따라 상담, 건의 또는 고충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군인복무규율 제25조 제4항
군인은 복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진정ㆍ집단서명 기타 법령이 정하지 아니한 방법을 통하여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하여서는 아니 된다. 

 

위와 같은 규정 내용과 그 취지를 고려하여 보면, 군인은 상관의 지시나 명령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지휘계통을 통하여 상관에게 이를 건의하여야 하고, 그러한 지휘계통을 통하지 아니하고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지되어 있으므로,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앞서 국방부장관 지시의 위헌성에 관하여 상관에게 건의를 하여 그에 대한 논의와 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곧바로 군 외부 기관인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행위는 군인복무규율에 위반된다는 것입니다. 사전건의 의무가 있다는 해석의 근거인 군인복무규율 제24조 제1항은 현재 군인복무기본법 제39조 제1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인복무기본법 제39조(의견건의)
① 군인은 군과 관련된 제도의 개선 등 군에 유익한 의견이나 복무와 관련된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지휘계통에 따라 단독으로 상관에게 건의할 수 있다.

 

군인복무규율의 규정에 따라 군인에게는 사전건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 행위는 규율 위반이고 따라서 징계사유가 있다는 입장은 1심과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사전건의는 의무가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수의견을 통해 군인의 헌법소원 제기가 복종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다수의견은 헌법소원이 헌법상 재판청구권에 기반한 정당한 권리 행사이므로 군인이 사전 건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복종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다수의견은 사전건의가 의무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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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두26401 전원합의체 판결】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 제27조가 재판청구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고 헌법 제37조에 따른 기본권의 제한방식으로서 법률유보를 선언한 법치주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군인에 대한 징계가 재판청구권을 행사하였음을 그 사유로 하는 때에는 그러한 재판청구권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또한 그러한 법률 규정은 군인에 대한 징계처분이 형사처벌에 못지않게 불이익이 뒤따르는 점을 감안할 때 징계권자의 자의를 방지하고 수범자가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사전에 예측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성을 갖추어야 하고, 만일 그렇지 아니함에도 이를 징계의 근거가 되는 의무규범으로 삼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두26401 전원합의체 판결】
군인사법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군인복무규율 제24조와 제25조는 건의와 고충심사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들은 군에 유익하거나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 부하는 지휘계통에 따라 상관에게 건의할 수 있고(군인복무규율 제24조 제1항),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현저히 불편 또는 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지휘계통에 따라 상담, 건의 또는 고충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군인복무규율 제25조 제1항)는 내용이므로, 이를 군인에게 건의나 고충심사를 청구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한 조항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다. 나아가 관련 법령의 문언과 체계에 비추어 보면, 건의 제도의 취지는 위법 또는 오류의 의심이 있는 명령을 받은 부하가 명령 이행 전에 상관에게 명령권자의 과오나 오류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명령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일 뿐 그것이 군인의 재판청구권 행사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군내 사전절차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두26401 전원합의체 판결】
원심이 사전건의 의무의 근거 중의 하나로 삼은 군인복무규율 제25조 제4항은 “군인은 복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진정·집단서명 기타 법령이 정하지 아니한 방법을 통하여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군인으로 하여금 복무와 관련한 불이익한 처분 등 고충사항을 ‘법령이 정하지 아니한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복무와 관련된 사항을 ‘법령에 의한 방법’으로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법령에 의한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헌법소원 등 재판청구권의 행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4. 소수의견: 사전건의 의무와 복종의무를 중시한 반대입장

반면 소수의견에서는 사전건의 의무를 중요한 절차적 의무로 간주했습니다. 군대 내에서 상관의 명령에 불복할 경우, 이를 헌법소원으로 바로 가져가기 전에 상관에게 먼저 건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소수의견은 군 기강 유지와 상명하복의 원칙이 군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고, 이를 어긴 행위는 군 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죠.

 

5.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와 영향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군대 내에서도 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사전건의 의무는 헌법소원 제기의 필수적인 절차로 요구되지 않으며, 이는 군인이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보다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군 조직 내에서 헌법적 권리 행사와 복종 의무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법적 선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판결 이후 군에서는 부대관리훈령을 통해 군인에게 다양한 채널의 상담 내지 건의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이제는 군인이 부당한 대우 등을 받을 경우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 이외에도 군외부의 여러 국가기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대관리훈령 제173조(고충상담 및 건의)
① 군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현저히 불편ㆍ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또는 질병 그 밖의 일신상의 사정으로 업무수행이 곤란할 경우에는 이를 지휘계통, 상담관, 내부공익센터, 국방헬프콜 등 군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군인권보호관), 국민권익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고충신고 체계를 활용하여 상담 또는 건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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