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도박자금 명목으로 B에게 5,000만원을 빌려주었으나 B는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돈을 떼일 것 같은 불안감에 A는 6개월쯤 지난 후 B를 재촉하여 B로부터 "2021년 8월 20일까지 변제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B는 계속 도박자금으로 빌린 돈을 갚지 않았지요.
A는 빌린 돈을 갚으라고 계속 독촉하다가 약 1년 5개월 후인 2022년 10월 B의 아버지로부터 "B의 A에 대한 5,000만원의 채무를 보증한다"는 보증서를 작성받게 되었습니다. 보증인까지 확보하였으니 A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한 달 뒤인 2022년 11월 B의 아버지가 아들인 C와 며느리 D에게 자신 소유의 부동산에 대해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주었습니다.
격분한 A는 사해행위를 주장하며 C, D를 상대로 증여계약의 취소와 그에 따른 원상회복으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도박자금을 빌려준 A는 소송에 성공했을까요?
이 사례의 핵심 포인트는 A로부터 도박자금을 빌린 B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A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주면서 반환약정을 했다는 점입니다. 차용증에 따른 반환약정이 유효하다면 A는 소송에 성공할 것이고, 반환약정이 무효라면 A는 빌려준 도박자금을 받을 길이 요원해 집니다. 관련 법률규정과 법리, 법원의 판결을 토대로 사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관련 법률 내용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민법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도박자금을 빌려주고 받기로 약속하는 것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법률행위로서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로 평가됩니다. 계약 자체가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도박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이는 불법원인급여로서 민법 제746조에 따라 도박자금을 빌려준 사람(급여자)는 도박자금을 빌려받은 사람(수익자)에 대해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법원에 대여금청구소송을 제기해도 법원이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불법원인급여 이후 별도의 반환약정의 유효성 여부
문제는 도박자금을 빌려준 6개월 후에 수익자인 B가 급여자인 A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주면서 "내가 빌린 돈을 갚겠다."라고 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도박자금 대여 6개월 후에 급여자와 수익자 간에 이루어진 법률행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대법원은 이와 관련된 법리를 이미 제시한바 있습니다. 불법원인급여 이후에 이루어진 별도의 반환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며, 그 효력을 부인하려면 수익자가 이를 주장ㆍ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법원인급여 이후의 별도 반환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A는 B에게 불법적 목적의 정치자금 20억원을 교부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B는 위법하게 수수한 정치자금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여 이를 A에게 반환하기로 약정하였습니다. 이 경우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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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
이 사건에서 원심(항소심)은 A가 B에게 도박자금으로 5000만 원을 대여했는데, 이는 민법 제746조에서 정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A에게 반환청구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도박자금으로 돈을 빌려주었더라도 그 후 별도의 약정으로 돈을 반환받기로 했다면 반환약정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제시된 법리를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대법원 2024. 12. 24. 선고 2024다272910 판결
불법원인급여 후 급부를 이행받은 자가 급부의 원인행위와 별도의 약정으로 급부 자체 또는 그에 갈음한 대가물을 반환하기로 하는 것은 그 반환약정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
여기서 반환약정의 무효 여부는 반환약정 자체의 목적뿐만 아니라 당초의 불법원인급여가 이루어진 경위, 쌍방 당사자의 불법성의 정도, 반환약정의 체결과정 등 민법 제103조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고, 반환약정이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는 점은 수익자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12580 판결 참조)
B가 당초 도박자금 명목으로 A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후 A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줌으로써 5,000만원을 반환하기로 하는 별도의 약정을 하였고, B의 아버지도 그 반환약정에 따른 채무를 보증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다. 그렇다면 B의 반환약정은 그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고, 이에 관한 B의 아버지의 보증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 도박자금을 대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반환 약정까지 불법원인급여를 이유로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별도의 반환약정이 있었다면 그 반환약정 자체가 무효인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 이 사건에서는 도박자금 대여 6개월 후에 수익자가 차용증을 작성하면서 수익자와 급여자 간 반환약정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도박자금을 빌려줄 때 차용증을 작성한 것이라면 "별도의 반환약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면 소송의 결과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사건에서는 6개월)이 지난 이후에 급여자와 수익자 간 반환약정이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이를 "별도의 반환약정"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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