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책임" 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으로 모두가 벌을 받는 시스템. 이는 직장뿐만 아니라 학교, 군대 등 다양한 조직에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명의 행동으로 전체 조직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이는 과연 공정한 처우일까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발생한 생도들의 연대책임에 관한 사건을 다루며 이러한 문제를 다시금 조명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연대책임의 적절성과 법적·윤리적 한계를 알아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육군사관학교는 학교 입시홍보 차원에서 2019. 3. 27.~3. 31.까지 2~4학년 생도 여러 명이 공무출장 형식으로 각자 모교인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홍보활동을 하였는데, 첫날인 3. 27. 2학년 생도가 규정상 제한된 음주를 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 피해를 당하였고, 학교 측은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를 통하여 사고발생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는 생도들이 복귀한 후 2, 3, 4학년 생도들을 대상으로 4. 1.~4. 5.까지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토의" 등을 진행하도록 하였고, 사고 관련 생도에 대하여는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여 근신 등의 조치를 하였습니다.
여단장생도, 인사참모생도 등 지휘근무생도들은 2019. 4. 1. 부생도대장을 찾아가 자성 차원에서 2학년 이상 생도들이 야간에 단체 뜀걸음을 할 것을 건의하였고, 생도대장은 이를 승인하였습니다.
2019. 4. 1. 학교 측은 22:00~23:00 학교 내에서 2, 3, 4학년 생도 900여명에 대하여 단체 뜀걸음(무장 13kg, 거리 5km)을 진행하였고, 부생도대장은 시행 전 지휘근무생도에게 "지휘근무생도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껴안고 가기 바람" 등 문자를 발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 뜀걸음에 대하여 일부 생도들은 연대책임이 부당하다며 군인권센터에 전화상담을 하였고, 군인권센터는 제3자 진정의 형식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최초 문제제기를 했던 생도는 불이익을 우려하여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제보자 이외의 다른 생도들을 대상으로 조사 희망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을 각하하였습니다. 다만, 사실관계를 통해 확인되는 연대책임 문제에 대하여는 의견표명을 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 제1항
위원회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관계기관 등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법적 쟁점: 연대책임 vs. 자기책임의 원리
연대책임은 자기책임의 원리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자기책임의 원리가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2004. 6. 24. 2002헌가27 결정】
헌법 제10조가 정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 내지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림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ㆍ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 "자기책임의 원리"는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의 한계논리로서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사건에서 생도들에게 부과된 야간 단체 뜀걸음이 사실상 "얼차려"에 해당한다고 보았는데요. 얼차려를 책임있는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대하여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헌법상 자기결정권 및 행복추구권과 충돌한다고 보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
국가인권위원회는 육군사관학교의 조치가 부당한 연대책임을 강요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주된 이유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단의 부적절성
공무출장 중 음주의 부적절함을 주지시키는 교육 대신, 전체 생도들에게 뜀걸음을 강요한 것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평가되었습니다. - 책임의 한정성 위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생도들까지 동일하게 처벌한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군대 문화의 부정적 전파 가능성
이러한 연대책임 문화는 생도들이 장교로 임관한 후에 부대에서 확대·전파될 위험이 있으며, 군대 내 집단 책임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권위는 육군사관학교가 생도들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사관학교에 대한 부당한 연대책임 강요 관련 의견표명(2019. 8. 22.)
군대에서의 집단 책임주의는 구성원 간 연대가 필수적인 전시나 전투훈련 등에서는 필요한 측면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그 외 이 사건과 같이 개인의 책임이 명백한 사안에서까지 집단에게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여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러한 연대책임의 문제는 비단 위 진정사건의 생도들만이 아니라 해당 교육과정을 거친 생도들이 임관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 일선부대 장병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미 경험해 온 바와 같이, 징병제 하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이 의무적으로 경험하는 군대 문화가 결코 군대라는 특수공간에서만 통용되지 않고 일반 시민사회 곳곳의 집단문화로 자리 잡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향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교육과 훈련 과정에서 부당한 연대책임을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학교 구성원 전체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의 시사점
이번 사건은 연대책임의 부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연대책임은 단기적으로는 조직의 기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구성원 간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불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조직 내에서 책임은 개인의 행동에 따라 부과되어야 하며, 잘못한 이들에 대한 명확하고 공정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연대책임의 부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조직의 관리자들은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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