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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상급자가 범죄 피해자에게 신고하지 못하도록 위력을 행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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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직에서 상급자의 권위가 하급자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때 그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특히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여 하급자로 하여금 범죄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고 이예람 중사와 관련된 사건에서 법원은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를 적용하면서 상급자의 부적절한 언행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법적 관점에서 분석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가 무엇이며, 법원은 어떠한 근거로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이 사건은 공군 부대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부서장으로 근무하던 피고인은 동료 군인에게 성범죄 피해를 입은 부하의 신고의지를 꺽으려는 행동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구체적인 피고인의 행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부대원 A가 피해자를 강제추행하였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피해자에게 "A를 보내려면 다른 사람 처벌은 불가피하다. 공론화를 시켜야 A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데, 공론화를 하면 그 자리에 있던 부대원 다 피해가 간다. 너도 다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가 과거 B로부터도 강제추행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A에 대한 강제추행 사실을 고소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자 피해자에게 "부탁 아닌 부탁 하나만 할게. 앞 전에 B 얘기는 하지마. 얘기하다 보면 또 욱해가지고 할 수도 있는데."라고 말하였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위와 같은 발언이 범죄가 된다고 보아 기소하였고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란 무엇일까요?

 

2.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란?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는 자신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친족을 정당한 사유 없이 만나자고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예를 들면 범죄의 피해자나 목격자 등에게 ① 증인을 서 달라고 자꾸 찾아가 조르는 경우나, ② 좋게 진술해 달라고 조르는 경우, ③ 합의해 달라고 강요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공정성을 해치고 관련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9(보복범죄의 가중처벌 등)
④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그 친족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사사건이 존재할 것

면담강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미 형사사건이 존재해야 합니다. 다만, 그 사건은 자기의 사건인지 타인의 사건인지를 불문합니다. 따라서 현재 자기가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과 관련하여 면담을 강요한 경우뿐만 아니라, 제3자에 대한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면담을 강요한 경우에도 면담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형사사건이 존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① 고소만 제기된 상태, ② 경찰 수사 단계, ③ 검찰 수사 단계, ④ 재판 단계 등 어느 시점에서든 면담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해당 형사사건에 관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그 친족

가장 대표적으로 해당 형사사건의 피해자, 목격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의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찾아가는 경우, 증인에게 특정한 진술을 요구하기 위해 증인을 찾아가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사건의 직접 피해자 및 목격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증인의 가족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부모님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경우 등도 면담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하였을 것

강요란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활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직접 유형력을 행사한 경우는 물론 자신을 만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보인 경우에도 면담강요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의 위력이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일체의 유형적 또는 무형적 실력행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단순한 권유 내지 제안만으로는 위력에 행사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상관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위력을 행사"한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요. 대법원은 여기서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9 제4항에서 말하는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그것이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ㆍ협박뿐만 아니라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나, 어떠한 행위가 위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의 일시 및 장소, 행위의 목적, 피해자의 지위 등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도5646 판결)

 

정당한 사유가 없을 것

사건 관련자와 만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면담강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사유로는 ① 형사사건과 관계 없이 기존의 업무 관계상 부득이하게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경우, ②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 만남을 가진 경우, ③ 상대방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한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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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원의 판단: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 성립 이유

법원은 피고인의 위와 같은 발언이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고인이 가해자 A에 대한 처벌 내지 정식신고절차의 진행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신고를 하게 되면 다른 부서원들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피해사실 신고로 인하여 부서원들이 겪을 어려움과 그로 인한 부서장으로서의 난처한 사정을 부각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신고하지 말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고,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에 대한 죄책감 내지 부담감이 들게 함으로써 신고를 체념하게 하거나 주저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지위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발언은 피해자의 피해사실 신고 등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피고인이 가해자 A를 고소하려는 피해자에게 B로부터의 강제추행 피해사실은 진술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은 피해자의 장래적인 추가 진술가능성 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과 피해자의 직책, 계급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발언은 피해자의 추가 피해사실 신고 등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특가법상 면담강요등죄를 인정한 것입니다. 

  • 위력의 행사 인정: 피고인은 상급자로서 피해자에게 충분히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발언은 피해자의 신고 의지를 꺾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봤습니다. 
  • 피해자의 자유의사 침해: 또한 피고인의 발언이 피해자의 판단과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쳐 신고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판결의 시사점

이 판결은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여 범죄 피해자인 부하의 신고의지를 꺾을 경우 범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상급자는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성범죄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조직의 명분보다는 피해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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