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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국제형사법

침략범죄: 최고의 국제범죄로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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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범죄는 왜 국제사회에서 가장 무거운 범죄로 여겨질까?"

국제형사재판소(ICC)의 4대 핵심 범죄 중에서도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80여 년 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는 침략범죄를 최고의 국제범죄 (supreme international crime)라고 평가하면서 침략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단죄하였습니다. 

오늘은 침략범죄가 최고의 국제범죄로 불리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침략범죄란 무엇인가?

침략범죄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타국에 대해 불법적 무력공격을 계획, 준비, 개시 또는 실행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영토 점령, 무력 침공, 군사적 봉쇄 등이 포함됩니다. 침략범죄는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국제법상 금지된 무력 사용을 통해 다른 국가의 주권,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침략범죄가 최고의 국제범죄로 불리는 이유

1. 전쟁과 비극을 촉발하는 원천 범죄

침략범죄는 국제법상 가장 심각한 파급 효과를 초래하는 범죄입니다. 일단 한 국가가 불법적으로 무력 공격을 개시하면, 그 이후에는 통제 불가능한 폭력의 연쇄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전선이 확대되면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전쟁범죄), 특정 집단에 대한 조직적 박해나 학살(인도에 반한 죄 및 집단살해죄)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따라서 침략범죄는 단순히 한 국가의 주권 침해를 넘어, 수많은 생명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비극의 출발점이 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비극의 원천 범죄"로 평가됩니다.

 

2. 국제 평화와 안보를 정면으로 위협

침략은 단지 공격받은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무력으로 공격하면, 인접 국가들까지 불안정해지고, 결국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무너뜨릴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나라들이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전쟁의 참화가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는 전후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유엔헌장 제2조 제4항에 명시된 "무력사용 금지 원칙"입니다. 침략범죄는 이 국제사회의 약속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행위로서, 단순한 국가 간 갈등이 아니라 국제법 질서 전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로 간주됩니다.

Article 2(4) of the United Nations Charter
All Members shall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against the territorial integrity or political independence of any state, or in any other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3. 개인적 형사책임 부과

침략범죄는 국가 전체가 아니라 "개인", 즉 국가의 최고 지도자나 고위급 지휘관에게 직접 형사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과거에는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발생해도 그 책임을 전체 국가나 정부 기관에 돌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침략범죄는 이와 달리 구체적으로 누가 전쟁을 계획하고 명령했는지를 따져 개인적으로 책임을 묻습니다. 특히 한 나라의 대통령, 총리, 국방장관처럼 실제로 무력 사용을 지휘한 인물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직접 기소되고 처벌될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는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는 국가 면책 원칙을 넘어, 권한을 가진 지도자가 국제사회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대 국제형사법의 중요한 발전을 보여줍니다. 이런 접근은 전쟁을 막고, 국제법의 준수를 촉진하는 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80여 년 전 뉘른베르크 재판의 수석검사였던 로버트 잭슨(Robert H. Jackson)의 지적처럼, 전쟁의 재발을 막는 궁극적인 방법은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 개인에게 그 법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4. 국제법 발전의 핵심적 이정표

침략범죄에 대한 처벌은 국제법 발전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나치 독일의 주요 지도자들이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그 중에서도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행위가 "최고의 국제범죄"로 규정되었습니다. 이 재판을 통해 세계는 처음으로 지도자 개인에게 전쟁 개시 책임을 물었고, 단순히 패전국 처벌을 넘어 국제사회 전체가 무력사용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개인 책임, 국제형사책임, 무력사용 금지라는 현대 국제형사법의 기본 틀을 마련한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됩니다.

 

침략범죄를 규율하는 현재의 체계

2010년 캄팔라 재검토회의를 통해 침략범죄의 정의와 관할권 행사 조건이 마련되면서 로마규정은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제사회가 침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다만 현재의 침략범죄 규범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침략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실제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의 침략범죄 규범은 비당사국이 관련된 침략행위와 그에 기초한 침략범죄에 대하여 ICC의 관할권을 부정하기 때문에, 로마규정 비당사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하여도 ICC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규범의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요. 

 

마치며: 침략범죄를 다루는 것의 의미

침략범죄를 국제법상 최고의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무력 대신 법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국제사회의 다짐입니다.

침략범죄를 단죄하는 노력은 전쟁의 악순환을 끊고 인류 공동체의 평화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길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법이 국제사회의 소중한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데 제대로 기여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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