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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국제형사법

침략범죄란 무엇인가? - 역사적 발전 과정과 국제법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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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현상이지만, 모든 전쟁이 법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국가 간의 무력 충돌 중에서도 특히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는 국제법상 가장 심각한 범죄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어떤 무력 사용이 침략범죄로 규정되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란이 이어져 왔습니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 재판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현대 국제법 체계에서 어떻게 발전했으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침략범죄의 개념과 역사적 발전 과정, 국제법적 논란을 살펴보겠습니다.

 

침략범죄란 무엇인가?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란 쉽게 말하여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과 영토적 완전성을 침해하는 무력공격을 감행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쟁범죄와 구별되며, 국제법적으로 처벌 가능한 독립적인 범죄 유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침략범죄를 국제적 형사책임이 있는 범죄로 규정하면서,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불법적인 전쟁 행위를 억제하고 국제 평화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침략범죄의 개념이 정립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침략범죄의 역사적 발전 과정

침략범죄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논의를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침략범죄 논의와 관련된 대표적인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1945년~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 처벌을 위해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독일 나치 지도자들이 전쟁범죄뿐만 아니라 "평화에 대한 범죄(Crimes Against Peace)"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오늘날 침략범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제군사재판소(IMT)는 전쟁을 불법적으로 개시한 것 자체를 하나의 범죄로 규정했으며, 이는 기존의 전쟁 중 저지른 범죄(예: 전쟁범죄)와 구별되는 중요한 개념이었습니다. 이 판결을 통해 국가 지도자가 국제법에 따라 직접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유엔헌장의 채택과 무력사용 금지원칙(1945년)

유엔이 창설되면서 유엔헌장(UN Charter) 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규범이 되었습니다. 특히 유엔헌장 제2조 제4항에서는 국가 간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였으며, 이는 후에 침략범죄 개념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의 승인이나 자위권 행사를 통한 무력사용은 예외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All Members shall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against the territorial integrity or political independence of any state, or in any other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국제법위원회(ILC)의 침략 개념 정립(1950~1970년대)

국제법위원회(ILC, International Law Commission)는 1950년대부터 침략의 법적 정의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Cold War) 동안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입장 차이로 인해 구체적인 법적 정의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따라 ILC는 침략범죄의 요소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이는 1974년 유엔 총회의 침략 정의 결의안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3314호 침략의 정의(1974년)

1974년 유엔 총회는 결의 제3314호(Resolution 3314)를 통해 침략의 정의를 공식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 결의에서는 어떤 행동이 침략으로 간주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으며, 이는 후에 ICC의 침략범죄 규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마규정의 채택과 침략범죄의 ICC 관할대상 범죄화(1998년)

1998년 로마규정이 채택될 당시 ICC는 제5조에 따라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의 네 가지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도록 규정되었습니다. 다만, 침략범죄의 정의와 관할권 행사 조건에 대하여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고, 후일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캄팔라 재검토회의에서 채택된 침략범죄 정의(2010년)

이후 국제사회는 침략범죄의 정의와 관할권 행사 조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다가 2010년 우간다 캄팔라(Kampala)에서 열린 재검토회의에서 침략범죄와 관련한 로마규정 개정조항을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캄팔라 재검토회의에서의 침략범죄 정의는 1974년 유엔 총회 결의 제3314호의 정의를 기반으로 하되,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추가하였습니다. 즉, 침략범죄는 '국가 최고 지도자가 다른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을 계획, 준비, 개시 또는 실행한 경우'로 정의되었습니다.

Article 8 bis
Crime of aggression
1. For the purpose of this Statute, “crime of aggression” means the planning, preparation, initiation or execution, by a person in a position effectively to exercise control over or to direct the political or military action of a State, of an act of aggression which, by its character, gravity and scale, constitutes a manifest violation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2. For the purpose of paragraph 1, “act of aggression” means the use of armed force by a State against the sovereignty, territorial integrity or political independence of another State, or in any other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ny of the following acts, regardless of a declaration of war, shall, in accordance with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3314 (XXIX) of 14 December 1974, qualify as an act of aggression:
(a) The invasion or attack by the armed forces of a State of the territory of another State, or any military occupation, however temporary, resulting from such invasion or attack, or any annexation by the use of force of the territory of another State or part thereof;
(b) Bombardment by the armed forces of a State against the territory of another State or the use of any weapons by a State against the territory of another State;
(c) The blockade of the ports or coasts of a State by the armed forces of another State;
(d) An attack by the armed forces of a State on the land, sea or air forces, or marine and air fleets of another State;
(e) The use of armed forces of one State which are within the territory of another State with the agreement of the receiving State, in contravention of the conditions provided for in the agreement or any extension of their presence in such territory beyond the termination of the agreement;
(f) The action of a State in allowing its territory, which it has placed at the disposal of another State, to be used by that other State for perpetrating an act of aggression against a third State;
(g) The sending by or on behalf of a State of armed bands, groups, irregulars or mercenaries, which carry out acts of armed force against another State of such gravity as to amount to the acts listed above, or its substantial involvement therein.

 

ICC의 침략범죄에 대한 관할권 행사 개시(2018년 7월 17일)

2017년 12월 1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로마규정 당사국총회는 침략범죄에 대한 ICC의 관할권 행사를 2018년 7월 17일부터 개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날은 로마규정이 채택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상징성도 매우 깊습니다. 

 

침략범죄의 국제법적 정의

캄팔라 재검토회의에서 채택된 로마규정 제8조의2에 따르면, 개인이 범하는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와 국가가 행하는 침략행위(act of aggression)는 구분됩니다. 즉 침략범죄는 침략행위를 전제로 하며, 침략범죄의 행위주체는 지도자 지위에 있는 사람에 한정됩니다.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

침략범죄는 한 국가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행동을 실효적으로 통제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침략행위를 계획, 준비, 개시 또는 실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침략행위는 그 성질, 중대성 및 규모에 의하여 유엔헌장의 명백한 위반에 해당하여야 한다. 

 

침략행위(act of aggression)

침략행위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 영토적 완전성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여 무력을 사용하거나 또는 유엔헌장에 위반되는 방식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의 어느 행위라도, 선전포고의 유무와 관계 없이, 1974년 12월 14일의 유엔총회 결의 제3314호(XXIX)에 따라 침략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a)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타국 영역에 대한 침공 또는 공격, 또는 아무리 일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침공이나 공격에 의한 군사점령 또는 무력행사에 의한 타국 영역이나 그 영역의 일부의 병합
(b)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타국 영역에 대한 폭격 또는 한 국가의 타국 영역에 대한 무기의 사용
(c) 한 국가의 항구나 연안에 대한 타국 군대의 무력 봉쇄
(d)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타국의 육군, 해군, 공군 또는 함대와 항공편대에 대한 공격
(e) 한 국가가 접수국과의 협정으로 타국의 영역에 있는 자국 군대를 협정에 규정된 조건을 위반하여 사용하거나 그 협정의 종료 이후에도 그러한 영역에 계속 주둔하는 행위
(f) 한 국가가 타국의 처분 하에 놓인 자국 영역을 그 타국이 제3국에 대한 침략행위를 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행위
(g) 한 국가가 위에서 열거된 행위에 해당될 정도로 중대성을 가지는 무력사용 행위를 타국에 대해 수행하도록 무장집단, 단체, 비정규병력, 용병을 보내는 행위 또는 실질적 관여행위. 

 

침략범죄는 전쟁범죄와 유사하지만, 핵심적인 차이점은 전쟁범죄가 전쟁 중 발생하는 특정 불법 행위(예: 민간인 학살, 포로 학대)라면, 침략범죄는 전쟁 자체를 일으키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침략범죄와 국제법적 논란

이처럼 침략범죄 개념은 국제사회에서 전쟁을 불법화하고, 지도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오랜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반대와 국제정치적 변수로 인해 실질적인 적용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 강대국(미국, 중국, 러시아)의 반대와 ICC 비가입 문제: 강대국들은 ICC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침략범죄 조항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로마규정에 가입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 UN 안보리 승인 여부에 따른 적용 한계: ICC의 침략범죄 조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가 승인하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침략범죄: 러시아는 로마규정 비당사국이므로 ICC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침략범죄 혐의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침략범죄에 대한 ICC의 관할권 행사 조건에 따르면, 로마규정 비당사국은 ICC의 침략범죄 관할권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 지도자의 침략범죄를 ICC로 회부할 경우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미국이 ICC에 적대적인 입장이므로 이러한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 한국과 침략범죄 조항 비준 문제: 한국은 로마규정 당사국이지만, 아직 침략범죄 조항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맺음말

침략범죄는 단순한 전쟁범죄를 넘어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범죄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반대로 인해 ICC의 실질적인 집행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침략범죄가 국제사회에서 실효성 있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 합의를 강화하고, 강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향후 ICC가 침략범죄를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제도적 개혁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불법적인 무력 침공을 억제하고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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