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원래 군대는 그런 곳이야."
"다 끝난 일인데, 조용히 좀 넘어가자."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군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들입니다. 신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는 오히려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전출을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상관은 화해를 종용하고, 동료들은 불편한 시선을 보냅니다. 더 나아가 피해자가 소속 부대에서 ‘문제 인물’로 낙인찍히고 불이익을 받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본질이 아닌, 피해자의 대응 방식과 태도가 비난받는 현상을 2차 피해라고 합니다. 군대처럼 폐쇄적이고 계급 문화가 뿌리 깊은 조직에서는 특히 이런 2차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는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를 망설이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주로 발생하는 2차 피해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군대 구성원들은 어떤 행위들을 조심해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2차 피해의 개념과 유형별 사례를 각각 주체별, 사건 처리 단계별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부지불식 간 2차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차 피해의 개념과 법적 근거
“2차 피해”란 성희롱ㆍ성폭력의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정신적 협박이나 물리적 강압 또는 다른 수단으로 피해자나 그 주변 인물을 괴롭히는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2차 피해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데요. 특히 군대에서는 국방부훈령인 부대관리훈령에 2차 피해의 개념과 예방 대책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2차 피해의 개념과 법적 근거: 2차 피해란 무엇인가?
2021년 대한민국 공군에서 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故 이예람 중사는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신고했지만, 사건이 끝나기는커녕 더 큰 고통이 시작되었습
leepro127.tistory.com
특히 부대관리훈령 제250조의3에서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의무를 군인ㆍ군무원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대표적으로 2차 피해를 발생시킵니다.
1. 업무를 위해 필요한 인원 이외의 사람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내용을 전파 또는 재전파 하는 행위(우연히 알게 된 내용을 전파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2.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행위자와의 화해나 합의(용서)를 강권ㆍ종용하는 행위
3. 피해자의 사생활, 외모, 품행 등을 해당 성희롱ㆍ성폭력 사건과 관련짓는 언동을 하는 행위
4. 피해자의 대응 태도를 평가하거나 이를 비난하는 언동을 하는 행위
5.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6. 행위자를 위한 탄원서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조직 구성원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전파하거나 탄원서를 강권ㆍ종용하는 행위
7. 기타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행위에 준하는 행위로서 2차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
또한 국방부 성희롱·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지침은 성희롱ㆍ성폭력 2차 피해의 예방을 위한 업무관련자와 구성원의 책무를 규정하면서 “2차 피해를 주는 행위”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지침 제7조(업무관련자의 책무) 2차 피해 사건의 업무관련자는 피해자 상담 및 지원, 조사ㆍ심의ㆍ의결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다음 각호의 2차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등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등의 행위
2.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책임을 언급하는 등의 행위
3.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고충 접수의 의도를 의심하는 행위
4.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예단을 가지거나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는 행위
5.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과거 언행을 부적절하게 질문하는 행위
6. 정당한 이유 없이 성희롱ㆍ성폭력 행위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행위
7.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희롱ㆍ성폭력 행위자를 동석시키는 행위
8. 목격자 회유 및 피해자 입장에서의 진술을 방해하는 행위
9. 정당한 이유 없이 비공식적으로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행위
10.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
국방부 지침 제8조(구성원의 책무) 국방부본부 및 소속기관,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 합동참모본부 및 각 군 소속 구성원과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제3자 및 구성원(행위자 포함)은 군 내 성희롱ㆍ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에게 다음 각호의 2차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행위
2.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고충처리 신청을 철회하거나 성희롱ㆍ성폭력 행위자와의 합의를 종용 내지 강요하는 행위
3. 피해자의 고충과 관련하여 그 고충의 내용이나 피해자의 인적 정보 및 평판에 관한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를 포함한다.)
4. 피해자를 비난ㆍ조롱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
5. 정당한 이유 없이 성희롱ㆍ성폭력 행위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행위
6.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언급하거나 피해 사실을 확인하려는 행위
7. 피해자 및 조력자에 대한 악소문을 유포하는 행위
8.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
위와 같은 행위들이 대표적인 “2차 피해”로 인정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군내 2차 피해는 주체별로 ① 조직이 유발하는 2차 피해, ② 동료가 일으키는 2차 피해, ③ 행위자가 범하는 2차 피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건처리 단계별로 ① 사건 접수 및 조치 단계에서의 2차 피해, ② 수사 또는 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 ③ 사건 종결 후의 2차 피해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주체별 2차 피해 사례
조직이 유발하는 2차 피해
- 피해자를 비난하고 부적응자 취급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반응하는 행위 (예를 들면, “군대 생활이 원래 그래.”, “그건 나무것도 아니지. 나 때는 더했어.”,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그래?”, “너도 잘한 건 없지.”, “그렇게 사람 하나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냐?” 등의 발언)
- 성희롱 사건의 접수 또는 조사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주로 사건 조사부서에서 유의할 사항)
- 사건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행위 (사건 초기 가피분리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등)
-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조사 시 부적절한 질문이나 태도를 보이는 행위
- 성희롱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행위
- 성희롱 사건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행위 (피해 내용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행위)
- 행위자를 옹호하는 의견이나 행위
- 피해자와 행위자 간의 화해나 합의를 종용하는 행위
- 사건조사에 협력한 간부, 상담관 등 조력하는 사람에 대한 불이익 조치
동료가 일으키는 2차 피해
- 피해자의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주변에 알리거나 SNS에 유포하는 행위 (가장 많이 문제 되는 행위)
- 사건에 대한 관용적 태도나 사건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행위 (사건내용을 잘 모르면서 행위자를 두둔하는 발언 등)
- 피해자에 대한 험담이나 비난하는 행위
- 피해자의 외모나 품행을 사건과 관련짓는 행위
- 피해자의 사생활을 캐거나 이를 문제삼는 행위
- 피해자의 대응 태도를 평가하거나 혹은 이를 비난하는 행위
- 피해자에게 행위자를 용서하라고 강권하거나, 화해 및 합의를 종용하는 행위
- 행위자를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
- 행위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행위
행위자가 범하는 2차 피해
- 사건 후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
- 조직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 탄원서 명목으로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에 대한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 피해자에 대한 험담이나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
- 조직 내 구성원들을 통해 피해자를 고립시키거나 고용상의 불이익을 야기하는 행위
-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피해자 변호사 및 제3자를 통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찾아가서 합의를 요구하는 행위
- 피해 사실을 알려 준 공익제보자나 목격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괴롭히는 행위
사건처리 단계별 2차 피해 사례
사건 접수 및 조치 단계
- 관할부서 미정으로 사건이 노출되는 경우
-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경우
- 업무 관계자 및 동료 등 제3자에 의한 회유
- 지휘관 주관 사건처리 간 개인정보 노출
- 주변인에 의한 피해 (예를 들면, “사과받았다면서 왜 다시 신고하느냐?”, “네가 언론에 보도했냐?”, “네가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휴가를 갔다.”, “네가 예민한 거다.”, “원래 군대 회식이 그런 거다.” 등의 발언)
- 신고자나 증인에 대한 비난 행위
- 가해자가 전출을 가기 원했음에도 부대 관계자들이 피해자가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분 노출
수사 또는 재판 단계
- 피해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진술하여 피해자에게 불리한 예단을 형성하도록 유도 (예를 들면, 피해자 증인신문 과정에서 개인 신변에 대한 소문 등 확인되지 않은 사항을 질문하는 경우)
-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재확인으로 성적 모욕감을 유발하는 경우
- 피해자 진술을 위한 출석 시 가해자와 마주치게 하여 피해자 신분을 노출시키는 경우
사건 종결 후 단계
- 성폭력 예방교육 시 사건 사례를 언급하면서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변형 없이 그대로 노출시키거나 인적 사항을 노출하는 경우
- 피해자가 전출가는 경우 유언비어나 잘못된 소문을 유포하는 행위
- 가해자의 가족 등이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
맺음말
군대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문제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와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필수적입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신고한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2차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것이며, 2차 피해가 방지될 때만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가능합니다. 이제는 조직과 사회 전체가 나서서 2차 피해 근절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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