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대한민국 공군에서 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故 이예람 중사는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신고했지만, 사건이 끝나기는커녕 더 큰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상관과 동료들은 그녀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사건을 무마하려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가해자는 보호받았고, 피해자는 고립되었으며, 결국 이 중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예람 중사의 죽음 이후 군대 내 성범죄의 2차 피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폐쇄적 환경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군대의 현실에 비추어 2차 피해의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높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로부터 외면받거나 불이익을 겪을 수 있는 것이죠. "부대 분위기를 해친다", "조용히 넘어가야 한다"는 말들이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군대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서 2차 피해란 정확히 무엇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무엇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2차 피해의 개념과 법적 근거, 군대 내에서의 예방을 위한 규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차 피해의 개념
“2차 피해”는 주로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문제제기 및 사건처리 과정과 이후 조직 내에서 겪게 되는 추가적인 피해를 의미합니다. 주로 성폭력이나 성희롱에서 2차 피해가 문제되지만, 학교폭력이나 집단 괴롭힘 등의 다른 범죄에서도 2차 피해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2차 가해”라는 용어도 혼용되고 있지만, 법률에서는 “2차 피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차 피해의 법적 근거
2차 피해는 일상용어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법률에 근거를 둔 법적 용어입니다. 2차 피해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여성폭력” 피해자를 전제로 합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말하는 “여성폭력”이란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신체적ㆍ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을 말합니다.
또한 “여성폭력 피해자”는 여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배우자(사실혼 포함), 직계친족 및 형제자매를 말합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정의) 제3호
“2차 피해”란 여성폭력 피해자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가. 수사ㆍ재판ㆍ보호ㆍ진료ㆍ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ㆍ신체적ㆍ경제적 피해
나.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ㆍ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로 인한 피해를 포함한다)
다. 사용자(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 그 밖에 사업주를 위하여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로부터 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입은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불이익조치
1)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조치
2)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그 밖에 부당한 인사조치
3) 전보, 전근,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4)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의 차별과 그에 따른 임금 또는 상여금 등의 차별 지급
5) 교육 또는 훈련 등 자기계발 기회의 취소, 예산 또는 인력 등 가용자원의 제한 또는 제거, 보안정보 또는 비밀정보 사용의 정지 또는 취급 자격의 취소, 그 밖에 근무조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차별 또는 조치
6) 주의 대상자 명단 작성 또는 그 명단의 공개,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ㆍ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
7)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 또는 조사나 그 결과의 공개
8) 인허가 등의 취소, 그 밖에 행정적 불이익을 주는 행위
9) 물품계약 또는 용역계약의 해지, 그 밖에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조치
부대관리훈령의 2차 피해 관련 규정
2차 피해의 개념 규정
국방부훈령인 「부대관리훈령」도 “2차 피해”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의 2차 피해 규정을 대부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유의할 점은 2차 피해가 신고자나 조력자, 대리인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규정한 부분입니다. 「국방부 성희롱ㆍ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지침」 제3조제1항도 동일한 내용으로 "2차 피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대관리훈령 제242조(정의) 제3호
"2차 피해"란 피해자, 신고자, 조력자, 대리인이 고충의 상담, 조사 신청, 협력 등을 이유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가. 수사ㆍ재판ㆍ보호ㆍ진료ㆍ언론보도 등 성희롱 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ㆍ신체적ㆍ경제적 피해
나.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ㆍ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로 인한 피해를 포함한다)
다. 성희롱ㆍ성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입은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불이익조치
1)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등 중징계나 그 밖에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
2) 감봉, 근신, 견책 등 경징계나 그 밖에 부당한 인사조치
3) 전출, 보직이동,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4)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의 정당한 사유 없는 차별과 그에 따른 보수, 봉급, 수당 등의 차별지급
5) 교육 또는 훈련 등 자기계발 기회의 취소, 예산 또는 인력 등 가용자원의 제한 또는 제거, 보안정보 또는 비밀정보 사용의 정지 또는 취급 자격의 취소, 그 밖에 근무 조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차별 또는 조치
6) 주의 대상자 명단 작성 또는 그 명단의 공개, 의도적인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ㆍ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
7)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 또는 조사나 그 결과의 공개
8) 물품계약 또는 용역계약의 해지, 그 밖의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행위
군인ㆍ군무원의 2차 피해 방지의무
특히 부대관리훈령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군인 및 군무원에게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2차 피해 방지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무위반 시 징계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의 7가지 행위들은 모든 군대 구성원들이 반드시 확인하고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부대관리훈령 제250조의3(피해자보호, 2차피해 방지 및 비밀유지의무)
④ 모든 군인 및 군무원(행위자를 포함한다)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업무를 위해 필요한 인원 이외의 사람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내용을 전파 또는 재전파 하는 행위(우연히 알게 된 내용을 전파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2.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행위자와의 화해나 합의(용서)를 강권ㆍ종용하는 행위
3. 피해자의 사생활, 외모, 품행 등을 해당 성희롱ㆍ성폭력 사건과 관련짓는 언동을 하는 행위
4. 피해자의 대응 태도를 평가하거나 이를 비난하는 언동을 하는 행위
5.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6. 행위자를 위한 탄원서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조직 구성원에게 피해자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전파하거나 탄원서를 강권ㆍ종용하는 행위
7. 기타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행위에 준하는 행위로서 2차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
특히 성희롱ㆍ성폭력 행위자에 동조하여 피해자에게 협박이나 강압 등을 가하여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훈령 제250조의3 제8항에 별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군인복무기본법은 성추행이나 성폭력 행위를 알게 된 군인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모든 군인은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인지하게 된 경우 상관에게 보고하거나 군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그 신고를 방해하면 문제가 되겠지요.
군인복무기본법 제43조(신고의무 등)
① 군인은 병영생활에서 다른 군인이 구타, 폭언, 가혹행위 및 집단 따돌림 등 사적 제재를 하거나, 성추행 및 성폭력 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상관에게 보고하거나 제42조제1항에 따른 군인권보호관 또는 군 수사기관 등에 신고하여야 한다.
② 군인은 제1항과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별도로 「국가인권위원회법」,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또는 그 밖에 다른 법령에서 정하는 방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을 할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각 부대장은 성희롱ㆍ성폭력 조사신청서 접수 시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합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1항)
이는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특히 부대관리훈령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선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행위자에게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우선 2차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에 우선적 가치를 둔 것으로 이해됩니다.
1. 행위자 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선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한다.
2. 부대별 여건을 고려하여 근무지, 숙소 등 행위자와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분리될 수 있도록 하되, 보직해임, 파견 등 인사조치를 적극 활용한다.
3. 피해자의 휴가(휴직) 등으로 자연 분리된 경우라도 소문유포, 탄원서 작성 강권 등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행위자는 원 소속 부대에서 분리한다.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압력, 회유, 소문유포 등 행위차단
각 부대장은 행위자와의 대면으로 인한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행위자 및 제3자의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 소문 유포 등 행위를 차단해야 합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2항) 특히 폐쇄적이고 단체생활을 하는 군부대의 특성상 소문유포를 막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피해자 측과의 일체의 접촉 금지
행위자는 성희롱ㆍ성폭력으로 신고된 이후부터 본인 또는 대리인이나 가족을 통하여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일체의 접촉(전화, 문자, 사회관계망서비스 등 포함)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과 또는 민ㆍ형사상 합의 의사의 전달도 피해자 변호사 등 대리인 또는 조사관을 통해서만 해야 합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3항)
피해자의 권리
피해자는 성희롱ㆍ성폭력 사건 처리에 있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고, 친족ㆍ군인ㆍ군무원ㆍ성고충전문상담관, 기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성희롱ㆍ성폭력 사건 처리절차에 참여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5항)
또한 피해자는 성희롱ㆍ성폭력의 사건처리 과정에서 이해관계 있는 자의 절차 관여 배제, 보건상담 및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의 치료, 보직조정ㆍ전출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사건처리 부대의 장은 긴급한 직무상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6항)
사건처리자의 2차 피해 방지의무
성희롱ㆍ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자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준수해야 합니다. (훈령 제250조의3 제7항)
1. 피해자와 그 대리인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업무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피해자 또는 대리인의 동의 없이 그들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어떠한 자료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특히,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 인적사항은 물론 ‘성희롱ㆍ성폭력 관련 사실 일체’에 관한 언론기관 등의 공개요구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응해서는 아니 된다.
2. 해당 사건에 대해 기소 또는 불기소, 징계처분이 이루어질 때까지 행위자의 동의 없이 그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자료를 공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3. 보직이동 등으로 성희롱ㆍ성폭력 사건 처리업무를 담당하게 된 자(성고충처리부서, 사건조사 및 수사기관 사건관련 담당자)는 업무개시 시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4. 피해자의 심리상태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사건처리 및 상담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피해자가 자유스럽고 편안한 상태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유의할 사항들
종종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당연히 필요한 증거의 제시, 진술, 증언 등을 요구하는 것마저 2차 가해라고 매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진실을 규명하는 사법절차에서 이러한 조치들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이 피의자를 변호하는 행위 자체는 2차 가해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죄가 명백해 보여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변호 과정에서 피해의 증언 및 증거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 이를 제대로 된 반증없이 무작정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면 이는 2차 가해로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군대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신고 후 겪게 되는 2차 피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러한 규범이 실현되려면 계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군 조직 내 2차 피해를 방지하려면 법과 제도의 정비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식 변화와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피해자가 더 이상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는 군대가 되려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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