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국가 안보의 최전선을 지키는 군대에서 경계작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009년 10월, 민간인 K가 전방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군의 경계작전 태세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특히, 최종적인 지휘 책임을 지고 있던 A 사단장은 보직해임과 징계를 받았고,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사건을 둘러싼 법적 쟁점과 판결을 살펴보고, 항소심 판결이 주는 시사점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2009년 10월, 민간인 K는 자신이 근무했던 ○사단 관할지역의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였습니다. 군은 이 사실을 북한의 보도를 통해 뒤늦게 인지하였고, 합참 차원에서 전방 철책에 대한 정밀진단이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결과, K가 GOP 경계망을 뚫고 월북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보직해임과 징계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부대의 다수 지휘관과 참모가 징계를 받았고, A 사단장 또한 보직해임 및 육군본부로부터 "견책" 처분을 받았습니다. A 사단장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국방부에 항고했지만 기각되었고,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법적 쟁점
이 행정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GOP 철책절단 월북사고에 대해 소대장을 기준으로 4차 지휘관인 사단장에게까지 지휘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지휘책임이란 사건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부하직원의 비위사실 등 과오나 위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감독의무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따라서 부하직원의 비위를 이유로 그 감독자의 감독태만을 묻기 위해서는 증거에 의하여 감독의무를 태만한 것이라는 데 관한 구체적 사실의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1979. 11. 12. 선고 79누245 판결)
1심 판결: 사단장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
1심 법원이었던 대전지방법원은 A 사단장의 견책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단장에게까지 지휘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대전지방법원 2011. 10. 19. 선고 2010구합3154 판결
① 해당 사단의 경우 약 30km에 이르는 GOP 경계와 70km에 이르는 동해안 해안선경계를 담당하고 있고, 이 사건 월북사고가 발생한 소초 외에 사단의 다른 소초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점에 비추어 소대장을 기준으로 4차 지휘관에 해당하는 원고에 대해서까지 경계근무실태와 관련한 미비점을 사전에 발견하여 조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② 이 사건 월북사고의 발생을 이유로 사단장인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처분을 하는 것은 결과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으며, ③ 해당 소초는 1,700m에 이르는 철책선에 대하여 야간에는 2곳의 상주초소와 2곳의 대기초소를 두고 주간에는 1곳의 고가초소를 운영하면서 2시간마다 근무병사가 근무 투입시나 철수시에 다음 초소까지의 철책순찰을 겸하여 점검하는 방식으로 경계근무를 하게 되어, 원칙적으로 근무를 선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월북사고 발생지점의 경우 적어도 주간에는 1시간 30분, 야간에는 1시간 20분 정도의 감시공백시간이 발생하는데, 민간인 K가 이 사건 월북사고 발생지점을 통하여 월북하는 데에는 길어도 5분 정도의 시간밖에는 소요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월북사고의 발생이 원고의 부대운용과 작전활동에 대한 지휘감독 조치 소홀이나 장병들의 경계근무규정위반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주요 판단 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당 사단은 약 30km의 GOP 철책과 70km의 동해안 해안선을 담당하고 있으며, 다른 소초에서는 경계 실패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사단장이 모든 미비점을 사전에 발견하고 조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사단장에게까지 징계를 부과하는 것은 단순한 결과책임을 묻는 것에 불과하다.
- 해당 월북지점에서는 주간에는 1시간 30분, 야간에는 1시간 20분의 감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민간인 K가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었다. 이는 사단장의 지휘감독 소홀로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 동초패 운용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되었으며, 해당 소초의 경우 동초패 운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상급부대에 보고된 바가 없었다. 또한 순찰일지는 대대의 지시로 생략되었고, 상급부대에서 직접 이를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
- 병사들이 경계근무 투입시 지정된 순찰로가 아닌 보급로를 이용한 것은 소초장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 역시 상급부대에 보고되지 않았다.
- 해당 소초의 감시 공백시간과 경계체계 운영 실태를 고려할 때, 사단장이 해당 미비점을 사전에 발견하여 조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였다.
항소심 판결: 지휘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항소심인 대전고등법원은 1심과 달리 A 사단장에 대한 견책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해당 사단장은 상고를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대전고등법원 2012. 8. 30. 선고 2011누2208 판결
① 원고는 사단장으로서 경계작전 전반에 관한 조정통제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고, 소속된 인적물적 자원에 대하여도 실질적인 최상위 지휘권한을 가지고 있었던바, 이러한 권한의 범위 및 영향력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이 사건 월북사고를 막아야 하고 막을 수도 있었던 지위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 처분은 충분히 수긍이 가고, 군 당국의 위와 같은 판단은 그 특수성에 비추어 존중되어야 하며, ② 교육훈련 등 적극적인 활동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에 있어 지휘관의 지휘책임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에는 만일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우려한 나머지 그 활동이 위축되거나 미시행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와 같은 활동의 경우에는 그것이 정상적인 활동의 시행 중 일어난 사고라면 그에 대한 지휘책임을 완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할 것인 반면, 이 사건 월북사고와 같이 경계작전에 관련된 사항의 경우에는 지휘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더라도 위와 같은 부작용의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중요성에 비추어 지휘책임을 폭넓게 인정함이 마땅하며, ③ 이 사건 월북과 관련하여 여러 지휘관들이 이미 징계처분을 받았으며,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에서 원고와 같은 지위에 있거나 더 상위에 있는 지휘관을 징계한 사실도 인정할 수 있는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 처분이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 원칙에 위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요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단장은 경계작전 전반을 조정·통제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므로, 월북사고를 예방할 의무가 있었다.
- 경계작전과 같은 방어적 작전에서는 지휘관의 책임을 더욱 엄격히 물을 필요가 있다. 훈련 중 사고와 달리 경계 실패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이어지므로, 지휘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 사단장은 취약지역을 사전에 인식하고 상급부대와 협조하여 보강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으며, 경계공백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책임이 인정된다.
- 유사한 사례에서도 사단장과 같은 수준의 지휘관들이 징계를 받은 바 있어,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경계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사단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항소심 판결의 시사점
이 판결은 군 지휘관의 경계작전 지휘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주요 시사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휘 책임의 범위 확대: 사단장과 같은 상위 지휘관도 경계작전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는 GOP 및 해안경계 작전에서 지휘관의 책임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군의 경계작전 강화 필요성: 위 판결은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법원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이에 따라 군의 경계작전 체계가 더욱 강화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3. 징계와 법적 책임의 기준 정립: 훈련 중 사고와 달리, 경계작전 실패에 대해서는 지휘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물을 수 있다는 기준이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유사한 사건 발생 시 지휘관의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맺음말
본 사건은 GOP 경계작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 사례로 남았습니다. 1심에서는 사단장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에서는 경계작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사단장의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군의 지휘체계에서 경계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판례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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