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받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처분을 받았을까?”
“항고를 했는데, 어떤 이유로 기각된 걸까?”
하지만 그 이유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군에서는 징계위원회 및 항고심사위원회의 심의 내용을 비공개 원칙으로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 징계 항고심사의결서를 무조건 비공개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군 징계 항고심사의결서의 비공개 결정이 과연 적법한지, 법원의 입장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
A는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사단장으로부터 “견책” 징계처분을 받았습니다. A는 징계처분에 대해 상급부대인 군단 사령부에 항고를 제기하였으나, 군단 항고심사위원회는 A의 항고를 기각하였습니다.
A는 자신의 항고가 왜 기각되었는지 궁금해하면서 항고심사의결서(다만, 성명 등 항고심사위원의 개인정보는 제외)를 공개해 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단에서는 항고심사의결서를 공개해 줄 수 없다며 비공개결정을 하였습니다.
정보 비공개결정의 근거
군단에서 항고심사의결서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군인 징계령 제14조의2(회의의 비공개)
징계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
1. 징계위원회의 회의
2. 징계위원회의 회의에 참여할 위원 또는 참여한 위원의 명단
3. 징계위원회의 회의에서 위원이 발언한 내용이 적힌 문서(전자적으로 기록된 문서를 포함한다)
4. 그 밖에 공개할 경우 징계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
공무원 징계령 제20조(회의의 비공개)
징계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은 공개하지 아니한다.
1. 징계위원회의 회의
2. 징계위원회의 회의에 참여할 또는 참여한 위원의 명단
3. 징계위원회의 회의에서 위원이 발언한 내용이 적힌 문서(전자적으로 기록된 문서를 포함한다)
4. 그 밖에 공개할 경우 징계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
법원의 판단: 항고심사의결서 비공개결정은 위법하다
A 중대장은 군 당국의 비공개결정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과 항소심 모두 항고심사의결서를 비공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판단을 유지하였습니다(대법원 2020. 5. 14.자 2020두33794 판결). 법원 판단의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20. 1. 20. 선고 (춘천)2019누1437 판결
가. 피고는, 이 사건 정보에 관한 원고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하여 군인사법 및 관련하위 법령을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나. 정보공개법 제3조는 '정보공개의 원칙'이라는 표제하에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위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같은 법 제4조는 정보의 공개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보공개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정하고 있다.
한편 군인사법은 제61조에서 징계위원회 및 항고심사위원회의 구성 · 운영과 징계절차, 징계부가금 부과절차 및 항고 절차, 그 밖에 징계처분 등의 시행 등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으나, 군이 징계절차 또는 항고절차에서 직무상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 등의 공개에 관하여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 앞서 본 바와 같은 정보공개법 제3조가 정하는 정보공개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정보의 공개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다고 보아 정보공개법의 적용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하여 정보공개법이 아니라 별도의 법률규정에 의하도록 한다는 입법자의 의사가 그러한 특별규정을 통하여 명확히 표출된 경우에 한정된다고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군인사법 제61조는 징계위원회 및 항고심사위원회의 구성 · 운영, 징계 및 항고 등의 절차, 징계처분 등의 시행 등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을 뿐이고 정보공개에 관하여 군인사법 또는 그 위임에 의한 하위입법에 의하도록 한다는 뜻을 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대통령령이 위 조항의 위임에 근거하여 징계위원회 및 항고심사위원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위원회 자체의 비공개를 규정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위 조항을 정보공개법 제4조에서 정하는 “정보의 공개에 관한 다른 법률의 특별한 규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처분의 근거법령으로 적시한 하위 법령들은 원고의 정보공개청구에 관하여 정보공개법의 적용 배제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하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법원이 징계 항고심사의결서의 비공개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핵심 근거를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보공개의 원칙(정보공개법 제3조, 제4조)
- 정보공개법은 원칙적으로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음.
- 예외적으로 다른 법률에서 특별히 비공개를 규정한 경우에만 공개를 제한할 수 있음.
- 군인사법 제61조는 정보공개 제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음
- 군인사법 제61조는 징계위원회 및 항고심사위원회의 구성·운영,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음.
- 그러나 징계 또는 항고 절차에서 작성된 문서의 공개 여부에 관한 별도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음. 즉 징계절차에서 작성된 문서의 공개 여부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는 않음.
- 대통령령(군인징계령, 공무원징계령)은 정보공개법의 ‘특별한 규정’에 해당하지 않음
- 정보공개법의 적용을 배제하려면, 입법자가 정보공개를 제한할 명확한 의사를 법률에 규정해야 함.
- 하지만 군인징계령, 공무원징계령 등 하위 법령에서 정한 비공개 규정은 정보공개법이 요구하는 "정보공개 제한에 관한 특별한 규정"으로 볼 수 없음.
- 결론: 정보를 비공개할 근거가 부족하므로 정보를 공개해야 함
- 군이 비공개 근거로 든 법령들은 정보공개법을 적용하지 않을 근거가 될 수 없음.
- 따라서 징계 항고심사의결서를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비공개 결정은 위법함.
즉, 법원은 군이 징계 관련 문서를 비공개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징계 항고심사의결서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법원 판결의 의미와 시사점
이 판결은 군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이 징계의결서 또는 징계 항고심사의결서(단, 성명 등 항고심사위원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부분 제외)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최초의 선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징계의결서나 항고심사의결서를 비공개하는 경우 소송을 제기하면서 위 판례를 원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입장에서는 대통령령인 군인 징계령 제14조의2, 공무원 징계령 제20조의 규정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징계의결서나 항고심사의결서는 "징계위원회의 회의에서 위원이 발언한 내용이 적힌 문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실무 부서에서는 이를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며, 법원에 가서 다투어 보라고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려면 군인사법 제61조를 개정하여 징계 심의ㆍ의결의 공정성을 위해 일부 내용을 비공개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고, 구체적인 범위는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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