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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항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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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 우리는 고위 장성들로부터 이런 믿기지 않는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 유령처럼 떠도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깊은 고민거리를 던집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명령에 맹종하는 것이 때로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를요.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나치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입니다. 그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조직적으로 실행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지만, 나중에 자신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였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생각의 멈춤과 맹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이히만이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재판에서 그가 주장한 항변은 무엇이고, 아이히만 재판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함의를 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악을 행하게 되는지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이히만은 누구였나?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조직적으로 이끈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나치 친위대(SS) 장교로 복무하며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수송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은 약 1,200만 명의 유대인 중 6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가스실로 보내진 수백만 유대인의 생사를 결정짓는 "수송 책임자"로서,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대량 학살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수송 책임자"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그는 유대인의 죽음을 실행 단계로 옮긴 핵심 관리자였습니다. 

 

아이히만의 도피와 체포 및 재판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15년간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나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는 그의 소재를 추적해 체포작전을 벌였고, 아이히만은 결국 이스라엘로 이송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몇 달간의 수사 끝에 1961년 4월 11일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이스라엘 법정에서 시작되었고, 재판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에 대한 재판은 나치 전범의 죄를 심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묻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재판 내내 아이히만은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면서 책임을 부인하였지만, 1961년 12월 15일 재판부는 그에 대해 사형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아이히만은 사형판결이 집행되기 직전까지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사면을 탄원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어떤 항변을 하였나?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자신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였고, 교수형 집행을 당하면서도 동일한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자신은 단지 명령을 수행하였을 뿐이지, 책임 있는 지도자는 아니라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그는 나치 정권의 유대인 이송 명령을 이행하였을 뿐이고, 직접적으로 유대인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행정업무로 축소하면서 자신은 책임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고 강조하였지요. 아이히만은 오히려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따랐다는 사실이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아이히만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개인적 범죄를 넘어 전범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 추궁과 도덕적 기준을 확립한 판결로 평가받습니다. 아이히만 재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하여 부하는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 평범한 사람도 비판적 사고를 멈추면 악행에 가담할 수 있다. 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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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악을 행하게 되는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남겼고, 여기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광기 어린 살인마가 아니라, 단순히 "생각하지 않는 관료"였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를 깊이 사유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상관의 명령"이라는 외피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자신이 저지르는 악에 대해 무감각했던 것이죠.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죄"가 결국 인간성을 잃게 만든다고 경고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악행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단지 명령에 따르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할 때 시작된다는 것이죠. 

 

결론: 우리는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히만 재판은 우리가 행동하기 전 반드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책임을 스스로 가져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죄"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명령은 정당한가?"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들이 바로 우리가 역사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책임회피에 급급한 장성들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습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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