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운전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지인에게 "나 대신 운전했다고 해주라."라고 부탁했다면 어떻게 처벌될까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면 순간적으로 동승자나 지인과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지요.
최근 음주 뺑소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트로트 가수 김호중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기도 하였는데, 김호중의 혐의 중에는 자신의 매니저 등에게 자신을 대신해 허위로 수사기관에 자수하게 한 점도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음주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지인에게 허위 진술을 부탁한 공무원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도 나왔는데요. 물론 이런 부탁을 듣고 의리를 생각해 "내가 운전했다."라고 허위진술을 한 사람도 처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운전자 바꿔치기를 부탁한 사람과, 그러한 부탁을 듣고 자신이 운전했노라고 허위진술을 하는 사람이 어떤 형사책임을 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부탁을 받고 자신이 운전자라며 허위진술을 한 자의 책임: 범인도피죄
이런 종류의 부탁은 대부분 친분관계가 있는 경우에 하게 되고, 이런 부탁을 받으면 많은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이런 부탁은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부탁을 못 이겨 자신이 운전했노라고 허위 진술을 하게 되면 "범인도피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도피죄는 형사사법절차를 방해하는 중한 범죄입니다.
형법 제151조 제1항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도피하게 하는 행위"란 은닉 이외의 방법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의 작용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자신이 운전하지도 않았는데 운전했다고 허위 진술을 하게 되면 당연히 수사나 재판 등 형사사법절차가 방해받게 되겠지요. 의리에 못 이겨 나섰다가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자기 대신 운전했다고 해달라 부탁한 자의 책임: 범인도피교사죄
그럼 지인에게 "나 대신 운전했다고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어떤 형사책임을 지게 될까요?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처벌대상이 아닙니다. 범인이 도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당연한 것이고 누구나 예측가능한 것이니까요. 범인이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역시 도피행위의 범주에 속하는 한 처벌되지 않습니다. 도피행위는 형사피의자의 방어권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범인이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언제나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적인 도피행위 내지 방어권 범주를 벗어나게 되면 방어권의 남용이 되어 "범인도피교사죄"의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형법 제31조(교사범)
①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②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고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교사자와 피교사자를 음모 또는 예비에 준하여 처벌한다.
③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지 아니한 때에도 교사자에 대하여는 전항과 같다.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12079 판결】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는 등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와 같이 방어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경우 방어권의 남용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① 범인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태양과 내용, ②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③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④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위 대법원 판례도 예를 들고 있다시피,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는 행위는 범인도피교사죄의 대표적 사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3. 자신이 운전해 놓고 타인의 허위진술을 방관한 자의 책임: 범인도피방조죄
여러 가지 이유로 동승자가 앞장서서 자신이 운전했노라고 허위진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실제 운전한 사람이 즉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면 문제없겠지만, 모른척하면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범인도피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32조(종범)
①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도7647 판결】
범인이 자신을 위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여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행위는 방어권의 남용으로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하고, 이와 같은 법리는 범인을 위해 타인이 범하는 범인도피죄를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최근의 뉴스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회사원 A씨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고, 사고 직후 직장동료 B씨가 마치 자신이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것처럼 밝혔지만, A씨는 뒷좌석에 누워 이를 모른 척했고, 경찰조사 때도 B씨의 허위진술을 방관하였다.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 A씨는 주차장에서 음주 운전하다 다른 차를 들이받았는데, 경찰이 도착하자 동승자였던 B씨가 "내가 운전자"라며 거짓말을 했음에도 이를 방관하였다. A씨에게는 음주운전 전과 있었다. [징역 8월 실형]
- 교통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지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방문하여 자신이 교통사고를 일으킨 것처럼 허위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방조한 경우.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맺음말
음주운전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더 나아가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려는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는 형사사법 절차를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는 범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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